국내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190조 원에 달하지만, 수익률은 1.01%(지난해 말 기준)에 그친다. 최근 5년으로 환산해도 1.88%로, 은행의 순수저축성예금 금리(1.99%)를 밑돈다. 적립금의 90%에 달하는 돈이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형에 쏠려 있는 시장 구조가 낮은 수익률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탁용문(45·사진) 교보악사운용 퀀트팀장은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 문제로 물가상승률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탁 팀장은 “‘퇴직금은 손해나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원금보장형 상품에 집중돼 있지만, 투자 기간을 길게 놓고 물가를 감안하면 결국 손해”라면서 “물가상승률을 이기지 못하면 짜장면 10그릇을 살 수 있던 자금력이 결국 8그릇으로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9년 구 선물거래소 입사로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인 탁 팀장은 이후 베어링자산운용과 리코자산운용, 한화생명보험 등을 거쳤다. 2005년부터 4년 동안은 국민연금 운용전략실에서 주식 운용과 관련한 자산배분 노하우를 익혔다. 2017년에는 교보악사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약 1년간 준비 기간 끝에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출시했다.
탁 팀장은 여러 상품 중에서도 TDF가 노후 자금 설계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TDF는 가입자의 은퇴 시점을 ‘타깃 데이트’로 정하고, 생애주기에 맞춰 자동으로 자산 배분을 하는 프로그램(Glide Path)에 따라 은퇴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위험자산 비중은 줄이고, 안전자산은 늘려 운용하는 펀드를 말한다. 그는 프랑스 악사 인베스트먼트매니저(AXA IM)와 협업에서 글라이드 패스 모델 설계에 직접 참여해 한국인에게 맞는 자산배분 전략을 짰다. 특히 자산 배분에 있어 오픈 아키텍처 구조를 택해 차별성을 높였다. 기존 TDF가 자산배분을 자문하는 해외 운용사의 상품에만 투자할 수 있다면, 오픈 아키텍처는 모든 운용사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 악사 쪽과 매일같이 화상 회의를 했다”면서 “프랑스 악사가 보기에는 한국 사람들의 투자 성향이 유럽보다 공격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TDF의 자산배분 전략도 이러한 투자 성향에 맞춰 파리 본사에서 운용하는 펀드보다는 공격적으로, 미국보다는 약간 더 보수적으로 설정됐다”고 말했다.
탁 팀장은 고령화 시대의 준비를 위해서는 퇴직연금 시장의 양적,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민의 풍요로운 노후를 위해서는 국민연금보다 퇴직연금이 더 커져야 한다”면서 “국민연금이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주는 제도라면 퇴직연금은 은퇴 이후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복지비용 측면에서 퇴직연금의 활성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면서 “디폴트옵션 도입과 세제 혜택 도입이 시급한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