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3金시대 뺨치는 구태정치

입력 2019-06-17 17:36 수정 2019-07-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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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의 대결정치 답습-타협의 문화 실패-물밑거래만 청산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다. 아마도 12월 예산안 처리 시즌으로 기억한다. 여야 대립으로 국회 통과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예산안이 갑자기 처리된 뒷얘기다. 당시 여당 중책을 맡았던 중진의 설명은 이랬다. “여야 대립으로 예산안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야당에 ‘뭘 해주면 예산안을 처리해 주겠냐’고 물었더니 몇 시간 만에 답이 왔다. ‘의원들 겨울 휴가비를 줘야 하는데 돈 좀 마련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청와대에 연락했더니 ‘돈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곧 돈이 와 야당에 전달됐다. 그리고 얼마 안돼 안건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금 잣대로는 더러운 거래요 금권정치다. 여당 논리로는 적폐청산 대상이다.

당시는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로 통칭되는 3김시대였다. 3김의 카리스마를 앞세운 ‘계보정치’가 정치를 지배했다. 돈과 공천권이 무기였다. 시대가 변해 ‘구태정치’로 치부하지만 부정적 측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의 삭막한 정치와는 다른 끈끈한 게 있었다. 낮에는 얼굴을 붉히며 싸웠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소주 한잔 하는 저녁자리가 꽤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여야 의원들이 적지않았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물밑 채널이 형성됐다. 여야의 공식 회담이 결렬되면 이들이 움직였다. 극단적인 대결속에서도 타협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이다. “(3김 주도로 치러진 88년 총선으로 형성된)4당 시절에 타협을 통해 법안이 가장 많이 처리됐다”는 생전의 DJ(김대중 전 대통령) 얘기는 빈말이 아니었다.

과거 정치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 때는 3김이 움직이면 정치가 굴러갔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어떤가.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오죽하면 일각서 “차라리 3김 때가 나았다”는 얘기가 나올까. 타협이 생명인 정치는 실종됐다. 시정잡배 수준의 막말이 넘쳐난다. 상시 싸움판이다.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장외로 나가기 일쑤다. 국회는 두달 가까이 문을 닫았다. ‘동물국회’를 청산한다더니 이젠 아예 ‘식물국회’가 됐다. 올 들어 법안 가결률이 23.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 중요한 법안들이 몇 년째 표류하고 있다. 3류도 모자라 4류정치로 전락했다.

그들이 비난했던 구태정치가 사라진 지 오래다. 더 이상 금권정치와 공천장사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깨끗한(?) 풍토가 구현된 만큼 정치도 달라져야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좋아하는 ‘청산’만 한 결과다. 과거 정치 지우기에만 열을 올리느라 새로운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구태정치 청산을 외쳤지만 그들은 3김시대를 넘어설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3김의 카리스마를 대체할 새로운 협의의 리더십 구축은커녕 청산대상 1호인 대결정치를 그대로 답습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리더십의 위기다. 집단지도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표가 합의한 게 의원총회에서 뒤집힌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싸움판으로 변질된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 만의 얘기가 아니다. 만사를 대통령에게 기대는 민주당이나 길을 잃고 장외에서 방황하는 한국당도 다를 바 없다.

돈 정치를 대신할 타협의 문화를 만들지 못한 채 ‘물밑 거래’부터 청산했다. 정치가 실종된 마당에 대화가 안되니 대결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다. 여야가 만나면 자기 주장만 하다 얼굴을 붉히고 돌아서서 욕하는 게 일상이 됐다. 요즘엔 여야 의원들의 저녁자리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저녁자리가 화제가 될 정도다. 식사도 자기들 끼리 한다고 한다.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다. 마땅한 물밑 채널이 있을리 만무하다. 여야 사이에 넘지못할 벽이 생긴 건 당연하다. 남북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한 터에 여야 영수회담조차 못하는 게 우리 정치 현주소다.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조만간 현실이 될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당은 여당 답고 야당은 야당 다워져야 한다. 여당이 야당같이 싸우려 달려들고 야당이 여당처럼 전부를 취하려 하니 꼬일 수밖에 없다. 여당은 과거 민주화투쟁 시절의 사고를 해선 곤란하다. 양보는 여당의 숙명이다. 야당도 모든 걸 달라고 떼를 써선 안된다.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거창한 정치복원은 차치하고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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