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브렉시트(Brexit)의 불확실성에서 엑시트(Exit)

입력 2019-06-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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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근대 경제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류의 모험은 무엇일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유럽연합(EU)의 설립을 꼽는다. 1·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과 평화의 다짐으로 유럽인들은 1957년 EU를 출발시켰다. 그 메커니즘의 핵심은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 사람들의 이동을 골자로 하는 경제공동체였고 그 대담한 시도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자유무역은 본질적으로 국제적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추구하기에 국내적으로는 경제력 편중과 경제적 약자에 대한 소득 재분배 문제가 과제이지만, 시계바늘을 돌려 보호무역체제로 회귀하는 것은 시장에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다른 경제 정책을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

2016년 6월 영국인들은 일자리와 경제적 이익을 명분으로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에 표를 던졌다. 이후 영국의 브렉시트 이슈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행보와 함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였고, 기업들에는 불안한 기운을 퍼뜨렸다. 영국은 EU에서 독일에 이어 제2위의 경제대국이자, 우리에게도 EU 내 두 번째 교역국이다. 우리 기업인들은 브렉시트가 되면 한-EU FTA를 통해 특별 관세 혜택을 적용받던 한-영 양국의 교역은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EU 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들도 원산지 인정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놓였었다. 게다가 EU와 아무런 합의도 없이 브렉시트가 이루어지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도 가능한 시나리오로 논의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지난 6월 10일, 한-영 양국 정부는 치열한 협상 끝에 ‘한-영 자유무역협정(FTA)의 원칙적 타결’을 선언해 이러한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해도 현행 한-EU FTA 수준의 협정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어떠한 시나리오에서도 한-영 양국 간 무역과 투자 환경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해 소비자와 기업들의 불안감을 조기에 차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EU FTA 발효 이후 크게 증가한 양국 간 교역 규모는 2017년 144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자동차, 자동차 부품, 선박, 건설중장비 등이 우리의 주요 수출품으로,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한다면, 자동차에는 10%, 자동차 부품에는 3.8~4.5%의 관세가 부과되는 충격적인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칠레, 스위스 등에 이어서 11번째, 아시아 국가 중에는 가장 먼저 영국과 FTA를 체결한 것은 정부의 발빠른 대응과 전문화된 협상력 덕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아직 영국과 FTA를 체결하지 못한 수많은 국가가 남겨놓을 무역 공백은 우리 기업들이 영국에 새롭게 진출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한-영 FTA가 양국의 교역을 더 늘리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등 실질적 경제 성과를 낳길 기대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성쇠를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했다. 자연의 끊임없는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에 따라 새로운 문명이 생성, 발전하기도 하고, 반대로 쇠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구체적인 브렉시트 조건을 둘러싼 영국 내 정치 상황은 혼란스러웠고, 영국 정부와 EU 집행부와의 논의도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를 포함한 모든 도전에 만전을 기한 정부의 기민한 대응은 통상정책과 협상의 성공적 응전 사례가 될 것이다.

신보호무역주의와 그에 따른 미-중 무역분쟁, WTO 개혁 논의,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과 전자상거래의 확산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도전은 끝이 없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 조성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응전이 계속된다면, 수출을 주춧돌로 삼고 있는 우리 경제도 성장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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