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0%대 물가가 4년만에 현실화할 조짐이다. 물가안정을 담당하는 당국인 한국은행조차 사실상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부의 복지정책 요인이 크다는게 한은 입장이다. 반면 경기개선을 통한 수요측 요인이 물가상승을 견인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23일 한국은행 5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은 집행부는 올해 물가전망과 관련해 “지난 전망시보다 하방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 4월 올해 소비자물가(CPI) 상승률 전망치를 1.1%로 예상했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0%대 물가 가능성을 인정한 셈이다. 현실화한다면 2015년 0.7% 이후 4년만이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이미 월별 물가상승률은 0%대다. 연간 0%대라는게 어떤 의미가 있겠나”라고 전했다. 실제 월별 CPI 상승률은 올 1월 전년동월대비 0.8%를 기록해 1년만에 0%대로 떨어진 이래 5월(0.7%)까지 5개월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 한은은 이같은 저물가의 주된 원인을 정부정책으로 꼽았다. 아울러 정책효과가 마무리되는 올 하반기부터는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봤다. 한은 집행부는 “기본적으로 수요측 물가압력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기간 연장 등 예상치 못한 정부정책이 가세했다”며 “지난 1년 동안 실시된 무상급식, 무상교복, 의료보험보장성 강화, 유류세 인하, 공공요금 억제 등 다양한 정부정책이 금년 초반 물가상승률을 상당 폭 낮춘 것으로 분석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정책이 1년 넘게 지속되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사라지고 일부 정책의 경우 종료시점이 있어 올해는 5월 이후의 물가오름세가 1~4월보다 높은 흐름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최근 원·달러 환율의 상승, 국제유가 상승 등의 상방요인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경기둔화가 내수와 소비회복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물가상승압력을 낮추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농산물 안정과 유류세 인하 등의 효과가 있었다. 다만 기본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수요측 물가압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라며 “세계경기 둔화로 수입가격이 낮아졌고, 내수부진이 지속되면서 소비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자영업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서비스가격도 올리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물가를 끌어 올리려면 경기가 좋아져 수요가 발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부양책을 써 경기하향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기본적으로는 제품 서비스 수요를 찾는게 중요하다. 결국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