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첨단 소재 수출 규제를 계획대로 4일 단행하면서 한일 양국 간 갈등의 해법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3일 일본 내 ‘한국 통’으로 알려진 일본종합연구소의 무코야마 히데히코 수석 주임연구원과 긴급 인터뷰를 갖고, 사태 악화 배경과 해법 등을 짚어봤다.
닛케이에 따르면 무코야마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전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놀라운 건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주말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을 수호하겠다고 강조해놓고선 며칠 뒤 이런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라고 했다. 무코야마는 일본 정부가 한국의 판결에 대해 보복에 나선다면, 일본제철 등 징용공 소송의 피고 기업이 한국 내에 있는 자산을 현금화하고나서일 것으로 예상했었다고 한다.
무코야마는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가 8월로 예정돼 있었는데, 이처럼 앞당긴 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징용공 문제 뿐 아니라 위안부를 위해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의 일방적 해산, 자위대의 P-1 초계기에 대한 레이더 조사문제 등 해묵은 불만들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폭발했다는 것.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경제 전쟁의 포문을 열면서 첨단 소재 3개 품목(TV·스마트폰의 유기EL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꼭 필요한 리지스트와 에칭 가스(고순도불화 수소)을 선택한 이유는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무코야마는 해석했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중요한 제품이며, 설비투자 측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견인하고 있는데, 이 기간산업의 핵심을 치는 게 한국 경제 충격파가 가장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으로의 수출을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저촉될 수 있는데다 일본 기업에도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재와 화학품, 제조장치와 계측기 등을 한국에 공급하고 있다. 또 일본 전체적으로 봐도 한국은 3개 품목의 주요 수출 상대국이다. 아울러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DRAM과 NAND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하는 전세계 기업도 영향을 받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일본은 세계에서 비판을 받게 된다.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셈이다.
무코야마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가 3개 품목의 수출을 금지하지 않고 개별심사제로 한 것도 그 부분을 감안한 조치였을 것이라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대응과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면서 수출을 통제할 것이라고 무코야마는 내다봤다.
일본 정부가 이번에 취한 조치는 한국 미국 일본 3국의 관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해보인다. 무코야마에 따르면 그동안은 아베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밀월관계였고, 그에 비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소원한 구도였다. 그러나 지난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주가가 급격히 상승했다. 무코야마는 트럼프의 성격을 감안하면 한미일을 연결하는 삼각형의 변의 길이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바뀔 수 있다고 봤다.
무코야마는 이번 사태에서 한일 양국 기업들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주 전 삼성전자 관계자와 만났을 때만 해도 ‘한일 기업 간의 관계는 좋다’고 했었다며 이번 조치는 그 운영 여하에 따라 한일 기업이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간 기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참의원 선거가 끝난 후 일본 경제 단체가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