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인사이드] 이건 몰랐지? 자동차 위에 내려앉은 디자인 전략

입력 2019-07-08 18:27 수정 2019-07-0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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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다, 지시하다, 성취하다’ ‘디자인(Design)’이란 말은 이런 뜻을 가진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탄생했다.

흔히 자동차는 ‘산업 디자인’의 정수라 말한다. 그럴 만하다. 디자인 하나에 회사가 되살아나기도, 거꾸로 쇠락의 길을 걷기도 한다. 때론 유명 디자이너의 영입이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디자인이 자동차의 기능과 브랜드의 가치, 지향점(지시)은 물론 지속가능성을 확대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성취)까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신차가 나올 때마다 “5년 동안 3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신차를 개발했다”는 홍보 문구가 단골로 등장했는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하나의 엔진을 여러 차가 함께 사용하고, 잘 만든 플랫폼을 등급별로 나눠쓰기도 한다. 자연스레 개발비용이 이전보다 적게 들어가면서 이런 홍보 문구가 사라진 것.

기술 개발비가 줄면서 디자인 면에서 성공 스토리를 쓰려는 노력은 더 커졌다. 그 결과 원가 절감은 물론 설비를 바꾸지 않고 디자인을 변경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일정 범위 안에서 디자인을 바꾸면, 기존 설비를 사용하면서 새 모델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디자인 기술의 발달이다.

◇대우 레간자에 내려앉은 한국의 처마 = 이런 디자인에는 브랜드 특징이 잘 담겨 있다. 비슷한 디자인 맥락을 이어가면서 브랜드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때때로 자국의 전통적 이미지를 자동차 디자인에 새겨 넣기도 한다.

국산차 가운데 좋은 사례가 1990년대 대우차 시절 출시된 중형 세단 ‘레간자’다.

당시 대우차는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이탈디자인’에 레간자의 디자인을 맡겼다. 포니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레간자에 한국의 전통미를 새겨 넣기로 마음먹었다.

이 과정에서 차체 벨트라인(도어와 유리창의 경계선)을 그릴 때 뒤쪽으로 갈수록 치켜 올라가는 모습을 디자인했다. 한국의 전통미를 더하기 위해 우리 전통 기와의 ‘처마’를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호프마이스터 킥… BMW가 고집해온 디자인 터치 = 독일 BMW는 고집처럼 전통적인 디자인 전략을 담기도 한다.

앞쪽 그릴을 2개로 나뉜, 사람의 콩팥을 닮았다는 의미로 불렸던 키드니(Kidney) 그릴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BMW가 수십 년 이어온 디자인 전통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호프마이스터 킥’이다.

자동차는 차체와 지붕을 연결하는 기둥을 일컬어 앞쪽부터 A필러, B필러, C필러라고 부른다. SUV와 왜건 등은 이 기둥이 하나 더 있는 만큼 가장 뒤쪽 기둥을 D필러라고 부른다.

BMW 세단은 앞에서 3번째 기둥, 즉 가장 뒤쪽에 있는 기둥이 위쪽으로 말려 올라간다. 이른바 ‘호프마이스터 킥’이다.

단순한 직선이 아닌, 지붕에서 시작해 차체와 만나는 부분을 넓게 확대하는 방식이다.

1970년대 BMW나, 2010년대 BMW나 하나같이 호프마이스터 킥을 쓴다. 최근 몇몇 모델이 이런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호프마이스터 킥은 BMW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둥의 강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전통적으로 BMW 세단의 안정감 넘치는 디자인을 그려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쌍용차 역시 최근 등장하는 모든 차종에 통일성을 앞세우고 있다.

전조등과 그릴 모양이 서로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쌍용차 역시 BMW와 마찬가지로 필러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쌍용차는 코란도C와 G4 렉스턴, 티볼리, 신형 코란도까지 모두 D필러(앞에서부터 4번째 기둥)를 두텁게 디자인하고 있다.

SUV의 강인함과 튼튼함을 상징하기 위해 모두 두터운 D필러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 디자이너는 “그릴과 엠블럼 이외에 같은 디자인이 여러 차종에 공통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특히 플랫폼이 공용화되면서 앞서 개발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소폭 디자인이 변경되다 보니 비슷한 디자인 터치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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