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비상이 걸린 우리 정부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주요 수입품목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에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정부 R&D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한다는 방침이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일본 측은 12일 한·일 전략물자 수출통제 담당 실무자 간 양자협의에서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시행령 개정·시행 일정을 고려하면 한국은 다음 달 22일부터 일본의 백색국가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의 백색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27개국이다. 백색국가 제외로 영향을 받는 품목은 첨단소재, 전자, 통신, 센서, 항법 장치 등 11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우리 정부는 대미 외교전, 일본과 양자협의 등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면서 국내에서도 예산·세제·행정절차 지원 등 다각적인 대응방안을 마련 중이다.
먼저 국회에서 심의 중인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일본 수출규제 대응 예산을 3000억 원을 반영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3개 부처가 요청한 1214억900만 원 등 각 부처의 예산을 취합해 조만간 구체적인 사업 목록을 확정할 계획이다.
신성장동력·원천기술 R&D 비용 세액공제 대상에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포함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에칭가스는 일본의 규제대상에 오른 3대 품목 중 하나다. 시스템 반도체 제조·설계 기술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하기로 했다. 신성장동력·원천기술 R&D 비용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20~30%, 중견기업 20~40%, 중소기업 30~40%로 세액공제 중 최고 수준이다.
정부 R&D에 대해선 예타를 생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달 초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반도체 소재를 비롯한 부품·장비 개발에 우선 예산사업으로 약 6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으나, 반도체 소재 1조 원 투입을 제외한 5조 원 상당의 일반 소재·부품·장비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가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정부가 차제에 예타를 생략하는 방안도 같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 관리법, 근로기준법(근로시간 단축) 등 규제 완화도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검토 중이다.
일각에선 주요 품목의 일본 수출을 제외하거나 일본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등 직접적 맞대응도 거론되지만 현실성은 낮다. 일본 측 조치가 아직 우리 기업의 피해로 현실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맞대응이 자칫 한·일 간 무역분쟁으로 번질 우려가 있어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 기업에 아직까진 실질적인 피해가 없기 때문에 맞대응까지 고려하진 않고 있다”며 “그보단 일본과 양자협의, 미국·세계무역기구(WTO) 등과 국제공조를 통해 일본 측 주장의 허구성과 부당함을 입증해 일본이 조치를 철회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