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최저임금 이후의 과제

입력 2019-07-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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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큰 외부와 달리 내부 사정이 나빠진 것에 정부의 정책이 기여한바 크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폭이 지난 2년을 크게 밑도는 2.9%로 결정되자 대통령은 취임 3년 내 1만 원 달성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무슨 소용이냐는 반응도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문제점을 여러 번 지적하고 동결을 주장했던 필자가 보기엔 1년쯤 늦은 결정이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다. 관련 정책을 복기하고 앞에 어떤 준령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관점에 따라 용감하게, 또는 무모하게 2017년 새 정부는 생경한 ‘소득(임금)주도성장’을 들고 나왔다. 임금을 올려 근로자들의 소득을 높이고 경제를 진작한다는, 누가 들어도 정책의 취지와 내용이 자명한 정책이다. 아둔한 경제학자들만 제외하고 다 ‘소주성’ 정책의 취지와 작동 구조를 이해했던 것 같았기에 마켓팅 히트작이었으나 막상 열어 보니 함량이 크게 모자란 시골 장터의 만병통치약이었다.

저임금 근로자들을 도우려 최저임금을 두 해에 걸쳐 30% 가까이 올렸다. 그런데 어려운 근로자 못지않게 사정이 안 좋은 소상공인들에게 큰 짐을 지운 것이다. 가뜩이나 업황이 시원치 않은데 인건비마저 크게 오르자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곳곳에서 주저앉았다.

6개월 후, 1년 후 효과가 나타나 좋아진다는 점쟁이 같은 정책 담당자들의 호언에도 불구하고 더 나빠지자 임기 초기 공세(攻勢)가 등등했던 정부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정책 책임자들뿐만 아니라 호전된 증거를 못 찾은 탓인지 통계청장까지 경질했다.

정부와 여당은 최저임금 결정에도 불구하고 ‘소주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소주성’의 성격이 2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져 시도되지 않았던 좌파 경제학적 내용들이 줄고 그 자리에 전통적 케인스 시각의 경기 안정과 진작을 위한 정부 지출 증대, 이전 소득 확대, 사회 안전망 강화 등이 자리하고 있다.

어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했다. 따라서 경기 부양을 위한 거시경제적 재정과 통화정책 수단이 총 동원될 양상이다. 물론 감세도 가능하나 정부의 소득 이전, 사회 안전망 확대 등으로 지출이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세금을 낮추면 재정 적자 폭 증가가 더 빨라질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초점이 달라진 정책의 효과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케인스식(式) 거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는 좌파 색안경 탓에 만사를 친노동/친자본, 친기업/반기업 2분법으로 구분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말하는 기업 편들기가 아니다. 케인스학파의 정책 효과 경로가 확장적 거시경제 정책으로 지출이 늘면 이를 보고 향후 호황을 기대하는 기업들의 투자 증대와 고용 확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여건을 감안하면 기업의 적극적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내 제조업의 높은 수출의존도 때문에 이들의 활성화에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 이상으로 해외 여건이 중요한데 요즘 악화일로다. 반도체 분야의 높은 일본 의존도가 큰 현안으로 급(急)부상했다. 이는 주력 산업의 걸림돌이어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제고는 또 다른 문제이다. 지난 10년간 추세적으로 오른 단위노동비용 때문에 한국의 제조업 수출 경쟁력이 크게 약화했다<6월 21일자 칼럼 참조>. 장사가 시원치 않은 것 같은데 파업 소식은 계속 들린다. 일을 하지 않아도 급여를 주면 단위노동비용은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 주휴수당, 이상한 기본급 계산 방식 등은 오히려 최저임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관행’이라며 모두 손 놓고 있다.

국내의 험난한 파업·고비용 여건에 더해 트럼프 정부의 수입품 관세 부과는 우리 제조업들이 생산거점의 해외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정부가 ‘제조업 르네상스’를 들고 나왔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구호가 아니라 최저임금 실험의 학습효과를 반영하고 현실을 직시한 발상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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