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보도되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보석으로 풀려나다 보니 국민들 중에는 이러다가 모든 수사와 재판이 다 유야무야 끝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제한적인 보석을 허가하는 것이 오히려 장차 수사와 재판을 실질적으로 더 철저하게 진행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구체적인 내막을 잘 모르는 국민들로서는 전에도 여러 고위층들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유여무야 끝났던 경험을 떠올리며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야무야는 ‘有耶無耶’라고 쓰며 각 글자는 ‘있을 유(有)’, ‘없을 무(無)’, ‘어조사 야(耶)’이다. 어조사란 실질적인 뜻은 거의 없고 어기(語氣:말하는 기세)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글자인데, ‘耶’는 대개 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로 많이 쓰인다. 따라서 ‘有耶無耶’를 글자대로 번역하자면 “있는 거여, 없는 거여?”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는 겨, 마는 겨?”라는 뜻이다. 하는 듯 마는 듯, 흐지부지해 버리는 것을 ‘유야무야’라고 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란 포폄(褒貶)을 잘하는 사회이다. 포폄은 ‘기릴 포(褒)’와 ‘깎을 폄(貶)’으로 이루어진 단어로서 “잘한 사람을 기려서 상을 주는 것과 잘못한 사람을 깎아 내려서 벌을 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상을 줄 사람과 벌을 줄 사람만 잘 분간하여 제대로 상을 주고 실지로 벌을 받게 한다면 세상은 바르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세상이 바르게 돌아간다는 것은 곧 정의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포폄이 반대로 진행된다면 정의는 전혀 힘을 펼 수 없고 불의만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고 만다. 따라서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 일은 절대 유야무야해서는 안 된다. 광복 후 친일파 청산을 유야무야한 결과, 지금 우리 사회는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 이상 범법자에 대한 처벌을 유야무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