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의 비틀스’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밴드로 군림한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이다. 50년도 더 지난 노래이지만 여름휴가 때만 되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뜨거운 기가 가신 삶은 옥수수 알을 떼어 먹으며 노래에 맞춰 발만 살짝 흔들어대도 세상만사가 즐겁다. 푸른 바다가 부르는 것만 같다.
경포, 주문진, 강릉, 속초, 외옹치, 맹방 등 동해 바다가 휴가객들을 위한 다양한 서머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다. 공짜 해수풀장과 이동식 바다 테마파크에 애완견과 함께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멍비치’도 마련했단다. 야간 수영장까지 개장했다니 여름밤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했던가. 올 여름휴가는 동해 바다로 갈 계획이다.
강원도 깡촌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푸른 해수욕장은 꿈의 세계였다. 석탄산업이 한창 성했던 1980년대 태백 탄광촌엔 탄가루로 검은 하천(지금은 ‘산소 도시’로 유명한 미세먼지 청정지역이지만)만이 흘렀기 때문이다. 친구 집 마당 평상에 누워 푸른 바다, 보드라운 백모래밭 이야기를 하다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던 여름날의 오후가 그립다.
“애들아, 오랜만에 목구멍의 때 좀 벗겨라.” 꽃무늬 남방을 즐겨 입으시던 친구 어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면 얼큰한 돼지비계찌개가 평상 옆 연탄 화로 위에서 끓고 있었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가 아니던가. 찌개 냄비에 밥을 말아 게눈 감추듯 해치우면 어머니께선 “하하하” 크게 소리 내어 웃으시곤 했다.
대여섯 명이 몰려가도 늘 반갑게 맞아주시던, 손맛 좋은 친구 어머니는 이맘때면 삼척 맹방해수욕장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셨다. 내 친구 이름을 딴 ‘○○포차’였다. 서예반이었던 나는 포장마차가 세워지면 안주 메뉴들을 정성껏 써서 기둥에 붙였다. 닭똥집, 닭발, 오돌뼈, 순대, 떡볶이, 두루치기, 돼지껍질…. 포장마차 안 정중앙에는 ‘안주一切 ’라고 한자로 큼지막하게 써 걸었다.
‘안주一切’. 독자들은 뭐라고 읽을까 궁금하다. 당시 한자깨나 안다는 손님들은 ‘일체’냐 ‘일절’이냐를 놓고 술값 내기를 하곤 했다. 一切은(는) ‘일체’로도, ‘일절’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이 완전히 다르므로 때에 따라 잘 골라 써야 한다. 일체는 모든 것, 전부라는 뜻이다. 포장마차에 걸었던 ‘안주 一切’는 ‘안주는 주문만 하면 뭐든 다 된다’라는 뜻이므로 ‘안주 일체’라고 말해야 바르다. 술이 종류별로 다 있다고 알릴 땐 ‘주류 일체(一切)’라고 써 붙이면 된다.
요즘 서울시내 술집 벽면에선 ‘안주 일절’ 혹은 ‘주류 일절’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둘 다 일체로 고쳐야 한다. 일절은 아주, 전혀, 절대로의 뜻으로, 무언가를 부정하거나 금지할 때 어울리는 말이다. “나쁜 행동은 일절 해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나 삼촌은 끝내 그 이상의 말을 일절 입 밖에 내지 않았다”(김춘복, ‘쌈짓골’) 등과 같이 활용할 수 있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일절’은 부정문 앞에만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동해 바다에 풍덩 빠져 땀을 식힌 다음에는 태백 도심인 황지로 가서 친구들과 두루치기에 소주 한잔해야겠다. 얄개 시절의 아스라한 기억을 찾으며. jsj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