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경제] ‘유럽축구 덕후’ 손지민 씨 “덕질 열정이 마케팅으로…취업도 성공”

입력 2019-08-02 15:53 수정 2019-08-0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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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경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건강한 덕후들을 통해 해당 산업을 조망하는 코너입니다. 덕질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더불어 ‘덕후’의 삶도 전하겠습니다. 주위에 소개하고 싶은 덕후가 있다면 언제든지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유럽축구 덕후' 손지민 씨가 지난달 25일 이투데이를 만났다. 축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유럽축구 덕후' 손지민 씨가 지난달 25일 이투데이를 만났다. 축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시간, 돈 아깝게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

과거에 덕질을 한다고 하면 종종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덕질로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것은 물론 자신의 진로에도 도움이 되는 시대다. ‘유럽축구 덕후’ 손지민(25)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평소 온라인 게임을 좋아했던 손 씨는 고등학생 때 우연히 축구게임을 하면서 '유럽축구'에 빠져들었다. 손 씨는 “게임을 하기 위해 팀을 선택해야 했는데 축구를 잘 알지 못해 ‘로고’가 이쁜 팀을 골랐다”라면서 “첼시(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리그에 속한 팀) 팬이 된 것도 우연이다”이라고 말했다.

게임 속 조작했던 선수들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유럽축구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계기가 된 것이다.

▲손 씨는 "첼시 홈 구장 맨 앞자리에서 축구를 본 게 덕질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사진제공=손지민 씨)
▲손 씨는 "첼시 홈 구장 맨 앞자리에서 축구를 본 게 덕질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사진제공=손지민 씨)

이후 그의 삶의 중심에는 ‘유럽축구’가 자리했다. 현장에서 축구를 보기 위해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딸을 혼자 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의 반대도 꺾었다. 손 씨는 “20살 때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라며 “수백만 원의 비용을 마련하느라 무던히도 애썼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동안 안 했던 영어공부도 다시 시작하게 된 것도 해외 중계를 생생하게 듣고 싶어서”라고 덧붙였다.

졸업을 앞뒀을 무렵, 손 씨는 ‘덕업일치’를 꿈꿨다고 한다. 축구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그는 대외 활동으로 한국에 있는 첼시 미디어팀에서 일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관리했다. 콘텐츠를 만들어 보급하고, 첼시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작 전 관련 내용을 카드뉴스로 만들었다. 1만2000명에게 첼시 정보를 전달하는 파수꾼 역할을 한 것이다.

▲손 씨의 방 한 편에는 첼시 디자인이 새겨진 물품들이 가득하다. 다른 유럽팀 유니폼도 많다고 한다.  (사진제공=손지민 씨)
▲손 씨의 방 한 편에는 첼시 디자인이 새겨진 물품들이 가득하다. 다른 유럽팀 유니폼도 많다고 한다. (사진제공=손지민 씨)

손 씨는 콘텐츠 제작업무 외에도 첼시 팬들이 모여 축구를 관람하고 다양한 게임도 함께하는 ‘뷰잉파티’ 기획에 참여했다. 여기서 만난 일부 팬들은 무리를 조직해 경기를 분석한 뒤 ‘스포츠토토’를 한다고 했다. 4~5명의 사람이 각 경기를 분석하고, 공유해 자료로 활용한다.

손 씨는 “어떤 사람은 14경기를 맞춰 큰돈을 벌어 유럽여행을 가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엘클라시코(스페인 프리메라리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경기)는 경기 표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그분은 스포츠토토로 번 돈으로 암표를 100만 원에 사서 들어갔다”라며 웃었다.

▲손 씨는 유럽축구 여행을 떠나면서 부모님이 모은 항공사 마일리지를 모두 쏟아 부었다. (사진제공=손지민 씨)
▲손 씨는 유럽축구 여행을 떠나면서 부모님이 모은 항공사 마일리지를 모두 쏟아 부었다. (사진제공=손지민 씨)

팬들 간 중고거래도 활발히 이뤄진다. 선수 사인이 담긴 유니폼처럼, 쉽게 구하기 어려운 유니폼이 주된 거래 대상이다. 손 씨는 “우승을 차지한 시즌이나 레전드(팀의 전설적인 선수)의 등 번호가 박힌 유니폼이 고가에 거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첼시 100주년 유니폼이나 리그 우승 당시 디자인의 유니폼은 30만~40만 원을 웃돈다고 했다. 중고거래로 1970년부터 2019년까지 첼시 유니폼을 수집하는 팬도 있다고 한다.

축구가 좋아 시작한 덕질은 손 씨의 구직활동에도 도움이 됐다. 덕질로 키운 자질과 열정을 높게 평가한 공공기관에서 최근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첼시 미디어팀에서 일하면서 마케팅 연구도 많이 했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많이 하면서 예전보다 성장한 나를 느꼈다. 인턴 면접 당시에도 축구 얘기를 많이 했는데, 무엇 하나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좋게 봐준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손 씨는 인터뷰 사진을 위해 자신이 모은 유니폼을 챙겨왔다. 모두 중고나 해외 직거래로 구입했다고 한다. (홍인석 기자 mystic@)
▲손 씨는 인터뷰 사진을 위해 자신이 모은 유니폼을 챙겨왔다. 모두 중고나 해외 직거래로 구입했다고 한다. (홍인석 기자 mystic@)

손 씨가 경험한 덕질의 즐거움은 또 있다. 아버지와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 원래 부녀 사이가 좋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와의 접점으로 중ㆍ고등학생 때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한다고 전했다.

손 씨는 "유럽축구가 대부분 새벽에 중계되는데, 못 보고 자는 날이면 다음 날 아빠가 경기 내용을 설명해준다"라면서 "국가대표 경기나 유럽 축구 결승전을 할 때면 아빠와 함께 응원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라고 말했다.

▲손 씨는 유럽축구와 한국 국가대표 경기를 즐겨본다고 한다. 그는 "인생의 낙"이라고 표현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손 씨는 유럽축구와 한국 국가대표 경기를 즐겨본다고 한다. 그는 "인생의 낙"이라고 표현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유럽축구 덕후로서, 첼시 팬으로서 손 씨가 바라는 것은 유럽 축구팀 간의 대결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직관이다. 첼시가 결승에 올라갔을 때, 직관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꿈꾼다고 했다.

손 씨는 "첼시가 우승한 도시에 머물면서 그 감동을 느끼고 싶다. 우승하면 첼시 팬들도 더 늘어날 테니 함께 더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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