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이제 산업정책을 새롭게 할 때이다

입력 2019-08-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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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객원교수,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소재나 부품을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우리 산업의 취약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60년대부터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수출 주도형 경제 정책을 추진하여 세계적인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와 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2000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세계 경제에 편입되면서 급속한 산업 발전을 시작하였다.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막 벗어나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주력 산업은 중국 시장을 우리의 제2 내수 시장으로 삼아 과감한 현지 투자를 통해 외환위기로 잃었던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였다. 중국에 조립 가공 시설을 늘리고 국내에서 중간재를 생산하여 세계 시장에 팔았다. 이때 중간재는 일본의 핵심 소재와 장비를 들여와 생산하는 소위 한·중·일 3국 간 분업구조가 생성되었다. 이것은 동아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장으로 만들어 세계화의 성공 사례가 되었으며 3국은 자유무역을 선도하는 주체 세력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3국은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하였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기업의 전략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시행하였고, 한국 경제는 무역 1조 달러를 넘는 ‘무역6강’의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시련도 있었다. 2007년 뉴욕 월가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를 가져왔다. 그러나 제조업이 강한 우리는 일찍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금융이나 관광 서비스업, 또는 원유 등 자원생산 의존도가 심한 국가들은 장기 침체나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처했다. 우리는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하여 위기관리 역량을 키웠다.

지금 세계는 금융위기가 극복되고 새로운 경제 질서가 모색되는 시기이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국의 급부상은 80년대 냉전 종식 이후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다자무역체제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중심주의(America First)는 경제적으로 미·중 마찰과 1995년에 생성된 WTO 다자체제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기존의 다자체제가 자국에 유리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면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며 중국과 무역마찰을 지속하고 있다. WTO의 다자규범이 약화되면서 힘에 의한 쌍무적인 협상이나 딜이 일반화되었다. 이에 따라 다자체제를 활용해 성장해온 우리 기업에는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

그런 가운데 일본은 3국 간 분업체제를 깨뜨리고 자유무역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우리나라에 부과하였다. 이는 2000년대 초에 정립된 자유무역체제를 옹호하고 중국의 WTO가입을 계기로 한·중·일 3국 간 분업체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에 근본적인 도전이 되고 있다.

한편 동아시아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큰 변혁기를 경험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세계질서’란 책에서 유럽은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 전쟁이 끝나면 패전국이 배상금을 지불하고 과거 상태로 돌아가면 균형이 회복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시아는 서구에 비해 늦게 근대국가로 전환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역동적인 곳으로 국제 질서도 새롭게 재편되었다. 중국이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려 하지만 아시아의 많은 나라는 과거의 질서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미국이 태평양 국가로 전환하고 아시아 중심의 전략을 펼치면서 새로운 세계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변화는 주변 국가들의 주도권 경쟁을 유발하는 촉매제가 된다. 한편, 과거 우리가 개발도상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이 미흡했을 때와는 달리 경제 강국이 되면서 국제사회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협력에서 경쟁자로 바뀌고 있다. 2차 대전 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이제 우리를 일본과 비슷한 경제적 위상을 갖춘 나라로 본다.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와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은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형성된 우리의 산업정책에 큰 도전을 준다. 기업들이 국제 분업 구조의 이점을 활용하여 성장하였는데 이제 여러 가지 위험을 맞이하고 있다. 많은 선진국들은 자국에 기업을 유치하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려는 중상주의적 전략을 보편화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측면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제품의 생산과 AI, 빅데이터,전지 등 새로운 기술이 융합되고 있다. 다양한 신산업이 출현하는 이 시기에 핵심 기술과 산업을 보유하는 것은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대응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원상 복귀시키는 노력과 함께, 우리 제조업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실효성 있는 제반 조치가 시급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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