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일본 경제보복 한 달…세 가지 이상징후

입력 2019-08-06 15:31 수정 2019-08-0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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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理が通れば道理引っ込む’. “억지가 통하게 되면, 결국 도리가 물러선다”는 일본의 속담이다. 지금 일본의 형국이 꼭 그렇다.

핵심소재 수출 규제를 내놓은 데 이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이번 결정으로 일본의 의도는 명확해졌다. ‘한반도와의 적대 관계 형성’ → ‘일본 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 국가화’ → ‘아시아지역의 주도권 확보’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한국을 자극해서 불안한 상태, 냉전 상태를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서 군비를 확충하고, 아시아지역에서 군사·외교적인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것. 과거사를 부정하고, 한국의 경제를 흔들려는 일본은 전범국의 ‘도리’보다는 ‘억지’를 택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의 구상을 완성하는 하나의 좋은 요건이 됐다. 일본은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속에서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어 경제는 물론, 과거 입에 담기 어려웠던 군사 부분에서도 일본이 아시아 중심국가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노릴 것이다.

최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봤듯이 미국은 한일 간 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의 중재를 기대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에게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수많은 나뭇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양국 간 대립이 심화할 경우, 미국은 우리에게 ‘북·중·러’인가? 아니면 ‘한·미·일’인가 선택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연일 발사체를 쏴대며 시위를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트럼프는 북한이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하는 순간, 북한을 단칼에 손절할 것이다.

복합적인 국제 정세를 펼쳐 놓고 보면 한국은 결코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다. 단순하게 일본이 수출 규제한 반도체 핵심 소재를 국산화했다고 끝날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가지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우선, 관과 정치인들의 선명성 경쟁이다. 반일 분위기가 사회 전체로 확산하자 너도나도 앞다퉈 나서고 있다. 서울 중구청이 8·15 광복절을 앞두고 도심에 ‘노 재팬’ 현수막을 걸었다가 시민의 반발에 재검토에 나선 게 바로 그런 사례다.

이는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일본 여행객과 국민을 자극하는 자충수다. 대립 상황에서도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고, 진심을 전하는 것이 사안에 걸맞은 성숙한 자세다. 국민이 낸 세금을 써서 일본 여행객을 몰아내는 것은 관이 할 일이 아니다. 타깃은 일본 정부이지, 일본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나 정치인의 역할은 문제의 해법을 찾고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해 실행하는 것이지 불매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관제불매'라는 프레임으로 자발적인 국민 불매운동의 진정성을 퇴색시킬 뿐이다.

그다음으로 정부가 푸는 약 8조 원의 연구·개발(R&D)비의 쓰임이다. 경쟁력이 떨어져 도태된 프로젝트를 ‘국산화’라는 명분에 다시 꺼낸다는 말이 벌써부터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적시 적소에 올바르고 효율적으로 쓰여야 할 정부 R&D 지원 예산이 ‘눈먼 돈’ 취급을 받으며 부실하게 사용된 사례는 그간 비일비재했다. 급하다고 돈을 빨리 풀기보다는 엄정한 심사를 통해 지원 대상 기술을 선정하고, 철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분열이다. 온라인은 다양한 의견이 혼재하는 곳이지만, 최근에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증시가 추락하자 대형 포털 댓글과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일본 정부가 아닌 우리 정부의 무능을 성토하며 책임론을 외치고 있다. 일본을 대적할 수 없다는 열패감도 난무한다. 국력이 약하니 비이성적인 불매운동을 접고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뒤, 나중에 힘을 길러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대안 없는 냉소론도 나온다.

“새 조약의 주지로 말하면, 독립(獨立)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帝國)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皇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100여 년 전인 1905년, 고종실록에 기록된 이완용의 말과 중첩되어 보인다면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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