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18세기 조선사회의 상업적 번영과 급속한 사회 변화, 기술 발달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셩: 판타스틱 시티'는 수원화성의 건설을 지휘한 정조의 혁신성을 동시대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시다.
전시의 제목 '셩'은 적의 습격에 대비해 구축한 방어시설을 총칭하는 '성(城)'의 의미와 밝게 살면서 헤아린다는 뜻을 지닌 정조(재위 1776~1800)의 이름 '셩/성((祘)'을 모두 담은 중의적 표현이다. 수원이라는 도시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두 개의 성인 '수원화성'과 '정조(셩)'를 김경태, 김도희, 김성배, 나현, 민정기, 박근용, 서용선, 안상수, 이이남, 최선 등 10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신작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 공간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공간인 왕릉(王陵) 형태로 구성하고 그 상징적 의미를 차용했다. 수원이라는 도시가 정조가 꿈꾸었던 이상향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영원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왕릉의 도입부인 진입 공간으로 정조의 실존적 삶과 그의 실존을 가능하게 했던 수원화성에 담긴 이념에 주목한다. 2부에서는 개혁군주로서의 정조와 죽음 이후 미완의 군주로 남은 그의 면모를 살펴본다. 3부는 신성한 공간인 왕릉의 능침(왕의 무덤)으로 정조의 이상향과 지향점을 통해 지금의 시간과 내일을 바라본다.
전시는 민정기와 서용선의 회화로 시작한다. 민정기의 회화는 수원 도심의 모습과 지역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수채화 같은 맑은 색감과 자유로운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서용선은 인간 정조의 실존적 삶에 주목해 과감한 색채와 형상의 불균형이 불러일으키는 강한 긴장감으로 정조가 지나온 무거운 시간과 극복의 과정을 보여준다.
나현은 개망초, 클로버 등 귀화식물을 활용한 작업과 16세기 서양 기술을 소개한 도서 '기기도설(奇器圖說)'을 결합해 책의 속성을 새로운 서사로 풀어낸 작업을 선보인다. 박근용은 수원에서 버려진 간판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해 진실이 은폐되고 존재가 지워지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전시장 한 벽에 새겨진 '이젠, 더 이상 진실을 덮지 마시오'가 그의 작품이다.
2부의 시작인 최선의 '침대성'은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침대 시트로 만든 수원 팔달산의 형상을 표현했다. 그 옆에 붉고 누런 흙을 전시장 안에 쌓아올린 건 은폐와 엄폐, 현실과 비현실, 삶과 죽음이 켜켜이 누적된 여정을 김도희가 표현한 것이다.
이이남은 과거와 현재가 응축된 수원화성의 시간을 뒤섞고, 과거의 도상과 기록을 현재와 병치해 미래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김성배는 7.5m의 흰 원형 선반에 먹물로 흑백 현상을 표현해 실존과 영원을 어떻게 사유해나갈지 질문했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안상수는 정조의 이름과 수원, 화성에서 글자를 추출해 만든 문자도를 선보인다. 사진가 김경태는 사계의 심도를 벗어나 모든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 기법을 통해 시각의 개념을 확장한다. 적의 동향을 살피는 동시에 공격이 가능한 수원화성의 군사 시설물인 '서북공심돈'으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