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합의하에 10월 31일 시한까지 탈퇴하려던 테레사 메이 총리와 달리 7월 말 당원 투표로 보수당 당수 및 총리가 된 보리스 존슨은 합의가 없는 노딜(no deal) 탈퇴도 불사하겠다 하여 두 달 앞이 오리무중이다. 노딜 브렉시트는 그 후폭풍에 대한 우려로 의회에서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며칠 전 노동당 제러미 코빈 당수가 탈퇴 강행을 막기 위해 정부 불신임을 한 후 임시내각을 구성해 브렉시트를 연기하고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불신임안이 가결되어도 존슨 총리가 10월 말까지 버티며 탈퇴를 강행하는 시나리오가 영·미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극단적 해결책의 하나는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존슨 총리를 파면하는 것이다. 이는 찰스 1세 이후 약 400년 동안 유지해온 왕실의 정치 불개입 전통을 깨는 것이니 헌정 위기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파운드화의 부침 과정을 통해 영국 정치를 보면 특이점을 알 수 있다. 통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일종의 변고(變故)는 보통 국정을 맡았던 정치 세력의 퇴진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1달러의 원화 환율이 1년 사이 두 배가 넘는 1800원까지 치솟았던 1997년 외환위기 때 장기 집권했던 여당이 대선에 패하여 역사적 정권교체가 있었던 것이 좋은 예이다.
브렉시트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 기간에 파운화가 크게 하락하는 일이 두 번 있었고 이는 집권당의 교체로 이어졌다. 1992년 9월 영국이 유럽 국가들 간 환율공조제도에서 탈퇴하며 한 달 사이에 달러 대비 환율이 약 15% 급락한다. 자중지란에 빠진 보수당과 달리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가 당수가 되며 좌파 성향을 포기하고 중도로 선회하여 지지도를 높인 결과, 1997년 총선에서 이기며 보수당의 20년 장기 집권을 종식시켰다. 두 번째로 2008년 영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하게 주택금융 시장의 파탄으로 대형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심각한 경기침체가 시작된다. 그 결과 1파운드의 가치는 2008년 가을 1.8달러 수준에서 이듬해 초 1.3달러로 약 30% 가까이 폭락한다. 그리고 2010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배하며 보수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그런데 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파운드 가치가 20% 가까이 하락했지만 아직까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불필요한 국민투표 실시, 이후 이어진 세 번의 총리 교체, 벼랑 끝에 이른 EU 탈퇴 등 국정 난맥은 명백한 집권당 책임이다. 관례상 의회에서 정부 불신임 절차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제1야당의 코빈 당수는 한정적 목적의 불신임을 제안하고 나섰다.
제1야당의 지리멸렬은 지지율이 낮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코빈 당수의 급진적 좌파 노선도 한 가지 이유이다. 그는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당수 시절의 중도화 노선에 비판적이었다. 과거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근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좌파정권 지지까지 서방 선진국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문 행보를 보였다.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애매한 입장을 견지하다 최근에야 마지못해 두 번째 국민투표와 탈퇴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못 받지만 열성당원 지지자들에 힘입어 2015년 이후 당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런 정치 성향을 못마땅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당의 거듭된 자살골에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이 소수 3당보다도 낮은 이유이다.
정치 양극화로 불안정이 증폭되며 파국으로 향하는 영국의 현실은, 정당 간 차이가 있으되 그것이 지나쳐 극명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중도의 무미건조함에 비해 극단의 선동이 솔깃하나 결과가 쓰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