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하이에크 ‘자유헌정론’

입력 2019-08-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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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간섭…개입주의의 비극

돈을 풀어서 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어제 일본의 불황 경험을 전하는 글을 읽었는데, 일본인들은 불황이 20년 지속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좀 심한 불황이구나라는 생각을 갖다가, 5년이 가고 10년이 가면서 20년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찔끔찔금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낮추는 일은 진통제와 같지만 가라앉는 나라 경제를 살리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경제는 경제하려는 의지의 복원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자유와 책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계획경제의 허구성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그런 체제가 결국에는 몰락할 수밖에 없음을 내다봤던 선각자 하이에크의 저서에 주목해야 한다. 여러 저서들 중에서도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 Ⅰ·Ⅱ’(자유기업원)은 자유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필독서다. 난해하지도 않기 때문에 조금만 집중력을 동원하면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자유사회를 구성하는 주춧돌에 해당하는 필수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제1부 자유의 가치에서는 자유와 자유들, 진보의 상식, 책임과 자유, 평등, 다수의 지배 등을 다룬다. 제2부 자유와 법은 강제와 국가, 법과 명령, 법치국가 등의 주제를 다룬다. 모두 13개 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각의 논문처럼 쓰인 책이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진리와 진실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문장은 ‘우리 사회가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이다. “인간사에는 완벽함이라는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의 탐구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최소한의, 또는 용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편함을 안겨주는 인간의 헌정을 추구한다.” 개인의 삶에서는 완벽함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역설적인 것은 어떤 사회의 지도자가 완벽함을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사용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정부 개입자들은 사회에 대한 완벽함을 갖고 있고, 권력을 이용해 이를 달성하려 한다. 여기서부터 개입주의의 비극이자 계획의 비극이자 간섭의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한·일 문제부터 시작해서 에너지 수급 문제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실수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식에 대한 오해와 과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문제점이 걱정된다면 소재에 관한 현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현장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현장지식’이다. 그런데 정책가들이나 정치가들이 흔하게 범하는 실수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해 과신을 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이른바 ‘과학적 지식’에 해당한다.

하이에크는 두 가지 지식의 혼용이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치는 점을 분명하게 경고한다. “지식이 단지 개인이 지닌 의식적, 명시적 지식 즉, 이러저러한 것은 이러저러하다는 식의 진술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만을 뜻한다면, 문명의 성장과 지식의 성장을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적 지식은 사회가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명시적, 의식적 지식조차 제대로 다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책가나 정치가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으며, 가능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식에 바탕을 두고 이런저런 개입과 간섭을 남발하지 않을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지속적 진보는 통제행사를 신중하게 자제하는 데 달려 있다”는 그의 지적에 깊이 동감한다. 이것저것을 모두 다 잘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정부 개입주의가 나라의 기초를 뒤흔드는 세태를 보면서 올바른 지식의 부족을 떠올린다. 근본지식의 습득을 가능하게 하는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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