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댓트립①] 바다·계곡 안 가요…천연 에어컨 속으로 떠나는 '여름 휴가'

입력 2019-08-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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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8월 추천 가볼 만한 곳

▲천곡황금박쥐동굴 탐방의 하이라이트 '샘실신당'.(사진제공=이하 한국관광공사)
▲천곡황금박쥐동굴 탐방의 하이라이트 '샘실신당'.(사진제공=이하 한국관광공사)
대개 '휴가'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더위를 피해 계곡과 바다 등 '물'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것을 떠올린다. 막상 물이 있는 곳으로 가면, 사람에 치이고 뜨거운 햇볕에 살만 탈 뿐이다. 여름 휴가 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자연이 만든 이색 휴가지로 떠나보자. '천연 에어컨'이 따로 없다.

◇ 도심 속 숨겨진 신비의 지하 세계 '동해 천곡황금박쥐동굴' = 동굴 탐방을 위해 꼭 깊은 산골까지 갈 필요는 없다.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천곡황금박쥐동굴'은 국내에서 유일한 도심 속 천연 동굴이다. 수억 년 세월을 간직한 동굴 옆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동굴 뒤쪽에는 석회암 지형과 어우러진 탐방로가 조성되어 인근 주민이 산책로로 애용한다.

▲안전 헬멧을 쓰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신비한 지하 세계 탐험이 시작된다.
▲안전 헬멧을 쓰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신비한 지하 세계 탐험이 시작된다.

동해시 동굴로의 천곡황금박쥐동굴은 1991년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처음 발견됐다. 1996년 일반에 공개됐다. 알려진 세월이 20여 년에 불과하다. 동굴은 총 길이 1510m이며, 깊이는 10m에 달한다. 생성 시기는 4억~5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810m가 관람 구간으로 개방된다.

동굴의 본래 명칭은 '천곡천연동굴'. 올봄 동굴 훼손을 막기 위한 개·보수를 하고, 지난 6월에 천곡황금박쥐동굴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천곡황금박쥐동굴에는 멸종 위기종 1급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야생동물인 황금박쥐가 서식한다.

▲천곡황금박쥐동굴 포토존.
▲천곡황금박쥐동굴 포토존.

동굴 입구에는 황금박쥐 모형이 커다랗게 장식됐다. 안전 헬멧을 쓰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신비한 지하 세계 탐험이 시작된다. 입구부터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동굴은 피서지로 손색없다. 동굴의 평균기온은 10~15℃.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이 이내 사라진다.

동굴은 석회동굴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닥에 솟은 석순과 천장에 매달린 대형 종유석, 석순과 종유석이 연결된 석주 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백나한상, 사천왕상, 피아노상 등 다양한 2차 생성물도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석주가 되려면 보통 수만 년이 걸린다는데, 아슬아슬하게 만남을 기다리는 석회 지형도 볼거리다. 종유석은 1년에 0.2mm 정도 자란다. 손으로 만지거나 부러뜨리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천곡황금박쥐동굴의 오백나한상.
▲천곡황금박쥐동굴의 오백나한상.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곡황금박쥐동굴은 석회암의 용식작용이 계속되는 현재진행형 동굴이다. 동굴에 물이 차면서 굴곡을 형성한 천장 용식구는 국내 동굴 중 최대급 규모를 자랑한다.

용식구 가운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한 용굴은 크기가 압권이다. 동굴은 몸을 절반으로 낮춰서 통과하거나, 앉아서 올려다봐야 진면목을 관람할 수 있는 코스가 이어진다. 툭툭 머리를 부딪히는 경우가 다반사라 헬멧 착용은 필수다.

동굴 탐방의 하이라이트는 샘실신당이다. 천장을 떠받친 석주와 좌불상 등이 한자리에 모인 지형으로, 조명 시설도 새롭게 갖춰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탐방로 중 최근 개방된 저승굴은 어두침침해 오히려 실감 난다. 발을 디뎌야 불이 들어오는 조명효과로 동굴 탐험의 묘미가 전해진다. 저승굴 구역에는 천곡황금박쥐동굴에서 발견된 동물 뼈를 전시한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석주가 되려면 수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석주가 되려면 수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동굴 내에서 동해의 사계, 반딧불이 등을 감상하는 특수 조명 쇼도 올해부터 관람할 수 있다. 천곡황금박쥐동굴은 개방 시기가 비교적 짧아 생성물의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다. 동굴이 들어선 천곡동은 예부터 큰 샘이 있던 마을로, 동네 이름이 여기서 비롯됐다.

동굴 밖으로 나서면 돌리네탐방로가 이어진다. 돌리네(Doline)는 동굴 생성의 비밀을 간직한 석회암 분지로, 천곡황금박쥐동굴 위쪽으로 군데군데 형성됐다. 나무 데크 탐방로를 따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으며, 야생화 군락지와 쉼터가 어우러져 산책 코스로 좋다. 동굴관리사무소 2층에는 동굴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화석을 전시한다.

▲최근 개방된 저승굴은 어두침침해 오히려 실감 난다.
▲최근 개방된 저승굴은 어두침침해 오히려 실감 난다.

시내에서 천곡황금박쥐동굴로 향하는 길은 제법 편리하다. 동해시청에서 10여 분이면 걸어갈 수 있으며, 동해종합버스터미널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다. 동굴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주차료 1000원). 여름 성수기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예약하면 문화관광해설사가 동굴에 담긴 흥미진진한 얘기를 무료로 들려준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를 뿝는 순창 향가터널.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를 뿝는 순창 향가터널.

◇ 일제강점기 터널에서 느끼는 서늘한 냉기 '순창 향가터널' =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도 있지만, 사람이 만든 동굴도 있다. 그런 동굴에는 대개 아픔이 서려 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강제로 만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향가터널도 그렇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향가터널.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향가터널.

순창에서 곡성 방향으로 한적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향가유원지 표지판이 보인다. 향가유원지는 이름 그대로 전북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향가마을에 있는 유원지다. 유원지로 진입하기 전에 있는 향가터널은 일제강점기ᅠ말ᅠ순창과 남원, 담양 지역의ᅠ쌀을ᅠ수탈하기ᅠ위해 일본군이 만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목포와 나주, 송정, 담양, 순창 등 호남의 곡창지대를 관통하던 철도가 이 터널을 지나갔다. 단단한 암벽을 뚫고 만든 터널은 길이 384m에, 차 한 대가 너끈히 지나갈 정도로 넓다. 얼마나 많은 순창 군민의 노동력을 착취했는지 짐작이 간다.

▲터널 벽에 공사 당시를 재현한 장식이 있다.
▲터널 벽에 공사 당시를 재현한 장식이 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마을을 오가는 터널로 사용되다가, 2013년 섬진강종주자전거길을 조성하며 터널 내부를 새롭게 정비하고 조명도 설치했다. 향가터널 주변은 섬진강종주자전거길 전체 구간 중 경치가 빼어나, 자전거 동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간이다.

▲터널 입구에 있는 농민과 일본 순사의 모형.
▲터널 입구에 있는 농민과 일본 순사의 모형.

터널 입구에는 곡괭이로 굴을 파는 농민과 총이나 곤봉을 든 일본 순사의 모형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냉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터널 속으로 한 발자국 들어왔을 뿐인데, 기온이 10℃는 낮아진 것 같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도 터널 속으로 침범하지 못한다.

▲수탈과 억압의 현장에 매달린 비둘기 모형.
▲수탈과 억압의 현장에 매달린 비둘기 모형.

천장에는 하얀 비둘기 모형이 매달렸다. 터널 벽에는 당시의 공사 현장과 미곡 수탈 과정을 재현해놓았다. 터널을 지나는 데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워낙 시원하다 보니 몇 번이나 왕복하게 되고, 어느새 더위가 잊힌다.

▲2억5000만 년의 신비를 품은 성류굴 내부.
▲2억5000만 년의 신비를 품은 성류굴 내부.

◇ 신라 진흥왕도 만난 2억5000만 년의 신비 '울진 성류굴' = 금장산에서 발원한 왕피천은 61km를 거침없이 흘러 망양정 앞으로 빠져나간다. 왕피천이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에 선유산(199m)이 우뚝하고, 절벽 아래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155호)이 있다. 임진왜란 때 불상을 굴에 옮겨 성류굴(聖留窟, 성스러운 불상이 머무른 곳)이라 불렀고, 장천굴 혹은 선유굴이라고도 했다. 성류굴은 총 길이 870m로 주굴 330m, 주굴에서 이어지는 지굴 540m이며,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된 구간은 270m다.

▲동굴호수에 잠긴 종유석과 석순.
▲동굴호수에 잠긴 종유석과 석순.

성류굴은 2억5000만 년 전에 탄생한 석회동굴이다. 4억6000만 년 전 하부 고생대인 오르도비스기, 경북 울진 지역은 얕고 따뜻한 바다였다. 산호초가 번성했고, 죽은 산호들이 퇴적해 석회암 지대가 생성됐다. 이 석회암 지대가 융기한 뒤 지상에서 빗물이 스며들고, 이산화탄소를 함유한 물이 지하의 석회암 지대를 만나 탄산칼슘을 녹이면서 형성된 것이 석회동굴이다. 석회동굴에서는 스며든 물이 떨어지며 종유석과 석순이 자란다. 성류굴의 장엄한 풍경은 2억5000만 년 전 천장에서 떨어진 물 한 방울에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류굴이 깃든 선유산 전경.
▲성류굴이 깃든 선유산 전경.

성류굴은 다른 동굴과 달리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명문과 글, 그림 등을 간직한다. 지난 봄에 발견된 동굴 명문에는 임랑, 공랑 등 화랑의 이름과 울진현령 이복연의 이름 등이 새겨졌다. 고려 말 학자 이곡은 성류굴을 탐험하고 '관동유기'에 우리나라 최초로 동굴 탐험기를 썼다. 성류굴과 관련된 시나 그림에는 역사 인물도 등장한다. 매월당 김시습은 '성류굴에서 하룻밤 자며'라는 시를 남겼고, 겸재 정선은 포항의 청하현감으로 내려갈 때 이곳에 들러 성류굴을 그렸다. 아마도 성류굴은 신라의 화랑과 승려들이 찾은 수도 공간이자, 고려와 조선 시대 학자와 선비들이 유람하며 글과 그림을 남긴 희대의 명승지가 아니었을까?

▲진흥왕 행차 명문.
▲진흥왕 행차 명문.

이제 선조의 발길을 따라 성류굴을 탐험해보자. 북부주차장에서 길이 왕피천과 나란히 이어지고, 커다란 암반 사이로 성류굴 입구가 있다. 입구는 한 사람이 허리를 굽혀야 간신히 들어갈 정도지만, 들어서는 순간 넓게 트이며 석회동굴의 향연이 펼쳐진다. 12개 광장 가운데 1광장 연무동석실부터 10광장 여의동까지 신비스럽고 기괴한 종유석과 석순이 여행자를 맞는다. 사계절 온도 15∼17℃, 습도 80~90%를 유지한다.

▲화랑과 울진현령의 이름이 새겨진 종유석.
▲화랑과 울진현령의 이름이 새겨진 종유석.

1광장 연무동석실은 임진왜란의 비극이 서린 곳이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백성 500여 명이 성류굴로 피란했는데, 왜군이 이 사실을 알고 입구를 막아 모두 굶어 죽었다고 한다. 5광장에서는 우측으로 길이 잠시 이어진다. 성류굴에 있는 5개 동굴 호수 가운데 용신지다. 동굴 호수 어디엔가 왕피천과 이어진 곳이 있어 물길이 생겼다. 왕피천의 수위가 높아지면 성류굴 호수의 수위도 높아지고, 때로는 호수의 수위가 높아 출입이 통제되기도 한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진 뒤 동굴에 물이 찼다. 잔잔한 호수 위로 석순과 석주가 있어 여느 동굴보다 신비롭다. 연못에는 향어나 잉어도 종종 보인다니 왕피천과 동굴을 이어주는 경계가 더욱 궁금하다.

▲커다란 암반 사이에 있는 성류굴 입구.
▲커다란 암반 사이에 있는 성류굴 입구.

8광장 초연광장은 최근 크게 알려졌다. 이곳 종유석과 암벽에서 진흥왕이 행차했다는 명문이 발견되면서다. 명문은 6행 총 25자로, '경진년 6월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가 50인이었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10광장 여의동까지 하마바위, 마귀할멈, 아기공룡둘리 등 형상에 따라 이름 붙인 자연 조형물을 차례로 만난다. 성류굴 입장료는 어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500원, 경로 1000원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동절기 오후 5시)다.

▲최근 크게 알려진 8광장 초연광장 전경.
▲최근 크게 알려진 8광장 초연광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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