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열전] 개혁개방을 이끈 18인의 이름 없는 농민들

입력 2019-08-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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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 조사관

대륙을 피폐시킨 ‘대약진운동’

1958년부터 사회주의 중국 대륙에서 유명한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이 전개되었다. “7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구호 아래 강행된 이 대약진운동은 농촌의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집단 농장화와 농민 대중에 의한 철강 생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대규모 집단농장, 즉 인민공사(人民公司)가 설치되었고, 모든 사유재산은 폐지되었다. 그리고 모든 가정의 뒷마당에 화로를 만들어 강철을 생산하도록 하였다. 농민들은 농기구며 냄비는 물론이고 심지어 문고리 등을 녹여 자신에게 강제로 할당된 강철 생산량을 맞춰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한 강철은 아무 쓸모도 없음이 곧 드러났다. 오히려 농산물 생산은 급감했고 때마침 소련의 원조도 끊어져 전국적으로 엄청난 기근이 발생하였다.

이 대약진운동은 결국 전국에서 무려 3000만 명 내지 5000만 명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아사자를 내고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 피해자 숫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총희생자 수에 비견되는 엄청난 규모였다.

빈곤국가 중국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 중의 하나였던 안후이(安徽)성의 조그만 농촌 마을인 펑양(鳳陽)현 샤오강춘(小崗村)이 예외가 될 리는 없었다. 아니 가난한 오지인지라 피해는 더욱 극심했다. 이곳에서는 대약진운동이 시작된 이듬해인 1959년부터 곧바로 기아로 굶어죽는 사람이 생겨났다. 당시 샤오강춘 마을의 주민은 모두 120여 명이었는데, 3년 동안의 대약진운동 기간에 무려 67명이 굶어죽었고, 이 중 6가구는 완전히 대(代)가 끊겼다. 펑양현 전체로는 자그마치 10만 명이 굶어죽어야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전개된 원시 공산주의 실험이었던 이 대약진운동은 ‘대약진’이 아니라 ‘대약퇴(大躍退)’였다.

인민공사 거부하고 ‘생산책임제’ 실천

1978년 11월 24일 밤, 샤오강춘의 농민 옌리화(嚴立華)의 집에 생산대장 옌쥔창(嚴俊昌)을 비롯한 18명의 농민들이 비밀리에 모여들었다. 지붕도 낮고 다 헐어져가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초가집에 18명이 모였으니 당연히 몹시 비좁았다. 그러나 이 보잘것없이 보이는 곳에서 중국의 현대사를 뒤바꾸는 위대한 역사가 탄생하였다.

이들 18인의 농민들은 모두 18개의 손도장을 일일이 찍고 ‘비밀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채 100자도 되지 않은 이 비밀 계약서의 내용은 첫째, 추수 후에 먼저 국가에 납부하여 국가의 몫을 보장하고, 농민의 지역 공동체조직인 집체(集體)에도 충분히 납부한 뒤 나머지를 자신이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이른바 ‘분전도호(分田到戶, 포산도호[包産到戶]라고도 부른다)’로서 인민공사를 거부하고 ‘생산책임제’를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당연히 명백한 ‘반혁명(反革命) 행위’로서 당시 살벌하던 ‘문화대혁명’의 공포 분위기에서 구속은 물론 목숨까지 걸어야 할 절체절명의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투옥과 생명의 위험을 모두 각오하고 있었다. 모두 ‘굶어 죽느니 서서 죽겠다’는 결연한 자세였다.

▲18인1978년 중국 안후이성 샤오강춘 18명의 농민이 쓰고 일일이 손도장을 찍은 비밀계약서. 중국국가박물관에 원본이 보관돼 있다.
▲18인1978년 중국 안후이성 샤오강춘 18명의 농민이 쓰고 일일이 손도장을 찍은 비밀계약서. 중국국가박물관에 원본이 보관돼 있다.

“국가에 돈과 식량 요구하지 않겠다”

계약서의 두 번째 조목은 더 이상 국가에 돈과 식량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내용은 만약 누군가 감옥에 가게 되면, 그 사람의 가족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먹여 살리고 아이들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키워주기로 서로 굳게 약속한 것이었다. 비밀 계약서를 쓰고 난 뒤, 옌쥔창은 “오늘 우리의 일은 상부는 속이지만 아래로는 속이지 않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하였다.

이들 농민들은 자기들이 맹세한 대로 비밀리에 ‘분전도호’를 실천했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1년이 지나고 마침내 1979년 10월에 샤오강춘 마을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풍작을 거두었다. 이 해의 총생산량은 66톤이었는데, 이는 1966년부터 1970년까지 5년 동안 샤오강춘 마을의 인민공사 소속 전 생산대대가 거둔 생산량과 맞먹는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출발했던 농민들의 자발적인 실천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덩샤오핑 “농촌개혁 모범으로 삼자”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덩샤오핑 시대가 되면서 마침내 중국에 개혁개방의 길이 열렸다. 그런데 개혁개방은 단순히 덩샤오핑이라는 한 개인의 뛰어난 생각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샤오강춘 농민들의 실천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기도 하였다.

1980년 5월 31일 덩샤오핑은 샤오강춘에서 18인의 농민들이 간난신고의 노력 끝에 이뤄낸 이 ‘분전도호’가 지닌 의미를 인정하고 농촌 개혁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중공(中共) 제11기 3중전회(중국공산당 제11기 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농업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약간의 문제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정’을 통과시켰고, 이어 1982년 1월에는 이러한 ‘생산책임제’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이 해 6월까지 전국 농촌의 86.7%가 생산책임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샤오강춘의 농민 18명이 목숨을 걸고 감행했던 ‘생산책임제’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것은 전국적인 토지개혁의 시발점이 되었고, 이는 다시 도시로 확대되면서 전국적인 차원에서 경제개혁, 개혁개방으로 승화, 발전할 수 있었다. 샤오강춘의 열여덟 농민들이 쏘아올린 ‘분전도호’ 운동은 중국 개혁개방 시대를 열어젖히는 빛나는 신호탄이 된 셈이었다. 그날 18인 농민들이 썼던 ‘비밀 계약서’는 현재 중국국가박물관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목숨 건 희생과 과감한 실천, 역사와 사회에 공헌

최초로 인물 중심의 기전체(紀傳體) 역사를 기술하여 ‘열전(列傳)’이라는 형식의 ‘인재론’을 창시한 사마천이 인물을 선정한 기준은 결코 지위의 높고 낮음이라는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었다. 그의 인물 선정 기준은 바로 ‘그 인물이 어려운 처지를 어떻게 극복하고 분발하여 역사와 사회에 뚜렷한 공헌을 남겼는가’라는 점이었다.

안후이성의 이름 없는 18인의 농민들. 그러나 이들은 목숨을 건 희생과 과감한 실천으로써 자신들이 처한 곤경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용감하게 개척했다. 뿐만 아니라 도탄에 빠진 중국을 개혁개방의 큰길로 인도하는 기적을 연출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현대 중국의 경제인열전에 포함될 충분한 자격을 지닌 인물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적의 역사에 ‘개혁선봉 훈장’ 수여

덩샤오핑도 1985년에 발표한 담화에서 “개혁은 농촌에서 시작되었고, 농촌에서 성과를 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용기를 내어 도시의 개혁을 진행하였다”고 천명하면서 “농촌 개혁에서 나타난 성과는 대단히 빠른 것이었고, 이는 우리가 원래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안후이성에서 쌓여진 경험에 근거하여 개혁의 방침과 정책을 제정하였다”며 안후이성 농민들이 세운 공헌을 인정하고 그 실천을 높이 평가하였다(1985년 6월 29일 덩샤오핑이 발표한 “개혁개방은 대단히 커다란 실험이다” 및 1987년 6월 12일의 “개혁을 더욱 가속화하자”의 담화 중에서).

중국 정부는 2018년 12월 28일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샤오강춘의 18인 농민들에게 개혁선봉 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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