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금감원·판례도 안 먹혀...보험약관 조정 “제3의 기구 절실”

입력 2019-08-26 05:00 수정 2019-08-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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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권고했지만 '안 하면 그만'…법원 판례도 당사자 반발땐 무용지물

금융감독원이 모호한 약관으로 촉발되는 ‘제2·3의 즉시연금’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집중 관리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약관을 검토하고, 행정지도에 나서고 있다. 보험금 지급 검사 과정에서 약관해석 분쟁 관련 미지급 검사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이 같은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법적 강제력을 갖춘 대안기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관점검 나선 금감원은 사후약방문? = 금감원은 올 초 생명보험 업계로부터 ‘약관상 보험금 지급조건 현황’ 자료를 접수했다. 즉시연금과 같이 가입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이 계산식에 의해 산출되는 경우의 상품들을 전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금감원은 구체적으로 산출방법서의 계산식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경우 △공시이율 △적립액 △기대여명 등이 적용되는 사례를 모두 제출토록 했다. 일례로 종신연금 선지급 특약 약관에서도 ‘산출방법서에 따라’, ‘공시이율로 할인하여’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해당 약관에는 “종신연금형의 경우 보증지급 횟수까지 지급되지 않은 생존연금을, 확정기간연금형의 경우 보험 기간의 지급되지 않은 연금을 산출방법서에 따라 공시이율로 할인하여 일시금으로 선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금감원이 이 같은 조치에 나선 건 즉시연금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다. 즉시연금은 보험가입 시 보험료 전액을 일시에 납입하고 가입 다음 달부터 매월 연금을 받는 상품이다. 분쟁의 쟁점은 ‘약관에 대한 해석’이다. 약관에 명확한 계산식이 명시돼 있다면 다툼이 없었다는 분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즉시연금으로 인해 약관 논란이 일자 분쟁 소지가 있는 다른 상품도 약관 개정을 추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제3보험의 질병진단보험금 약관 내용도 구체화했다. 일부 보험사가 질병으로 사망했음에도 질병진단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책임준비금만 지급해 민원이 지속 제기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최근 각 보험사에 질병진단보험금 기초서류를 명확히 하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했다.

이번 감독행정의 핵심은 특정 질병 진단보험금 지급과 정산에 분쟁 소지가 없도록 약관 내용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현행 약관은 기지급한 책임준비금을 제외하고 특정 질병 진단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지 않다.

이에 약관에 ‘피보험자 사망으로 계약이 소멸된 이후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할 경우 해당보험금을 지급해 드립니다. 피보험자 사망으로 계약이 소멸돼 책임준비금을 지급한 경우에는 진단보험금 지급 시 이미 지급된 책임준비금을 차감하고 차액을 지급해 드립니다’라는 취지의 문구를 넣도록 하는 것이다.다만 이는 강제성이 없는 감독행정작용의 일환이다. 감독행정작용은 금융당국이 보험사에 법령 등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직권으로 필요한 지침을 개별적이거나 구체적인 형식으로 제시하는 행위다.

◇“금감원 권고, 강제성 없다… 근본적 해결책 아냐” = 전문가들은 강제성을 갖는 제3의 민간 조정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윤석 손해사정사는 이투데이와 만나 “소송 외에 금감원이나 조정하는 곳이 힘이 있어야 한다”며 “차라리 제3의 조정기구를 만드는 것이 낫고, 그게 아니면 외주인력을 뽑아서 상설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보험 업계와 관련해서는 “보험사나 보험계약자가 직접 선임하는 독립손사를 구성해 어느 정도 조정된 사례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법원 판례까지 소비자 권리를 우선해 보험금 지급 판정을 내려도 강제성이 없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손해사정사는 “법원 판례가 나왔을 때 강제력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며 “그런데 지급을 강제하면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하는 문제도 있고, 또 법원에서 판례가 나오면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소송할 필요 없이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데 판례가 있어도 무시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금감원 같은 공적 민간기구와 함께 사단법인 형식으로 분쟁 해결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분쟁 해결을 위해 공적 민간기구인 FOS(Financial Ombudsman Service)를 운영한다. 이 기구는 금융 분야 분쟁을 담당하는 분쟁처리기관으로 정부 감독기구로부터 독립돼 운영된다. FOS 법인으로 분류돼 구성원은 공무원이 아니다.

FOS에 민원이 접수되면 중재인의 평가와 조사를 거친다. 중재안을 갖고 분쟁 주체 간 합의를 권고한 뒤,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 옴부즈맨 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는 보상 최고한도 15만 파운드(약 2억2000만 원) 내에서는 금융사에 법적 구속력이 부여된다. 이 이상의 보상액은 금융사가 소송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며 FOS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일본은 생명보험협회 소속 ‘생명보험 상담소’를 설립해 분쟁을 조정한다. 손해보험협회는 ‘손해보험 ADR 센터’에서 심사를 진행한다. 각 협회에 접수된 민원은 최종적으로 중재심사회를 거친다. 이 심사회는 변호사와 소비생활 상담원, 보험상담실 직원으로 구성한다. 중재심사회는 분쟁과 관련해 공정 타당한 입장에서 화해안을 작성하고 이유를 당사자에게 알린다. 이 화해권고안은 보험계약자가 수락할 의무는 없지만, 생명보험사는 원칙적으로 이를 수락해야 할 의무가 규정돼 있다. 이를 거절하면 금융당국에 보고하게 돼 있으므로 사실상 강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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