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키워야 나눌 수 있다

입력 2019-08-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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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친구 삭제를 통보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당황해서 이유를 물었다. 나와 생각이 달라서란다. 알았다고 메신저로 답변할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얼마 뒤 모임을 핑계로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삭제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현 정부를 디스한 내게 화가 났고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차올라 순간적으로 한 행동이었단다. 오프라인에서는 친구이지만, 온라인에서는 친구로 있기 그래서라 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한쪽을 맹신하고 균형을 잃어가는지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역사는 직선으로 올라가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좌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균형을 찾아간다. 권위주의 시대와 IMF 위기를 극복해가면서 우리 사회는 충돌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한 승복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승복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쟁이 격화되자 이제 균형보다 극단이 우리 문화가 되고 있다. 제자리에서만 빙빙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시대이다.

혼돈의 실체는 두 가치관의 충돌이다. 자유와 평등 모두가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조화로운 공존을 꿈꾸지만 두 가치의 충돌이 어쩌면 더 일반적이다. 경제는 자유를, 정치는 평등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1주권 1표에 의해 경영권이 행사되지만, 정치는 1인 1표에 의해 권력을 위임한다. 자유는 기회를 주고, 평등은 기회를 빼앗는다. 경제 발전은 성취 동기 때문에 촉발되고, 그 출발은 자유라는 가치이다. 반면, 평등은 누군가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물론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면, 개인의 재산권이 침해되더라도 성장의 파이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에 가깝다. 기업과 임대 및 금리 생활자가 가져가는 지대, 이자, 이윤 소득을 줄여 임금을 올려주면, 성장도 되고 분배도 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아쉽게도 현실은 유토피아적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기업은 투자를 안 하고, 가계는 소비를 안 하고, 자영업자는 가게를 닫았다. 부자는 버틸 수 있지만, 가난한 이는 점점 더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20·30대 청춘들이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게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최저임금을 올리자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가 사라지고,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기 위해 대출을 규제하자 내 집 마련 꿈은 더 멀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기업도 경력직만을 선호할 뿐, 신규 고용에 소극적이다. 노력해도 기회를 잡기 힘든 세상에서 ‘국민 정서를 건드렸지만, 위법은 아니다’라는 조국 후보자의 반론은 분노를 사게 된 것이다. 분배의 평등보다 우선시돼야 하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다. 게임의 룰이 공정해야 혁신이 출현하고, 우리 사회 전체의 파이가 커질 수 있다. 조국 후보자는 말과 행동이 달랐다. 기회의 평등을 말했을 뿐, 실제 행동은 그 대척점에 있었다. 그것이 분노의 본질이다.

“자유가 평등보다 중요하며, 평등을 실현하려는 시도가 자유를 해칠 수 있고,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평등은 없다.” 카를 포퍼의 말이다. 포퍼는 사회주의적 평등을 반대했지만, 자유와 평등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상호 자유롭게 비판 가능한 열린 사회만이 지속적인 개혁과 발전을 가져온다는 그의 혜안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자유와 평등의 대립적 가치관을 조화롭게 운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립과 갈등을 증폭해온 정치적 미성숙이 주된 요인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정치 진영 논리에 따라 갈등을 조작하는 흑백 논리이다. 인간은 불안할수록 획일적인 것을 선호한다. 경제 상황도 악화하고, 세대 갈등도 증폭되다 보니 점점 더 하나의 신념에 지배되고 있다. ‘답은 하나다’라는 흑백 논리는 다른 용어로 ‘전체주의’라 한다. 내 말은 옳고 나에게 반대하는 상대는 적이라는 뜻이다. 극좌와 극우의 전체주의는 우리 사회를 극단으로 내몰고 있고, 진영 논리는 우리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전체주의의 출현은 특정인만의 책임이라기보다 극단의 견해를 지지한 일반 시민의 책임이라고 했다. 지금 상황과는 다르다. 하지만 극우와 극좌 모두 전체주의의 냄새가 가득하다. 아직 우리 사회가 이를 용인하고, 견뎌내고 있지만, 그 피로도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시대에 다시 포퍼를 떠올리는 것은 그가 좌든 우든 필연적인 역사 법칙에 의한 전체론적 신앙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누가 지배하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지배 권력에서 영향을 미치고, 또 그 권력을 통제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그의 통찰은 지금 봐도 놀랍다. 결국, 그 사회가 지닌 개방성, 다시 말해 열린 사회인지 아닌지가 국가적 폭력에서 개인의 자유를 지켜주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촛불 혁명을 통해 얻은 것은 우리의 사회의 개방성이었다. 하지만 촛불 혁명으로 얻은 권력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지지는 안정적이고, 정적이지만 그로 인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에서 대안을 찾자. 자본은 적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자본을 죄악시하다 보니 자본은 쌓이는데 쓰이지 않고, 자본은 넘쳐나니 수익률은 떨어지고, 그 결과 자본은 해외로 수익을 좇아 빠져나간다. 소득의 해외이전이다. 그러면 국내 소득은 줄고 국내 경기는 더욱 위축된다. 가계의 부동산이든, 기업의 투자이든 은행에서 돈이 나오게 모든 수단을 써야 한다. 야당은 추경에 협조하고, 정부는 더 공격적으로 돈을 써야 한다. 동시에 세금은 줄이고, 각종 규제는 당장 풀어야 한다. 게임의 룰도 정비해야 한다. 주주 가치보다 오너 가치가 우선시되는 재벌체제는 여전히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법을 통한 평등(기회의 균등·주주가치)을 정비해야 한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돼지의 철학이라 비판받아 왔지만, 아직 살아남은 이유는 행복의 척도가 욕망의 충족에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물적 토대가 굳건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공리주의는 정의의 원칙이 될 수는 없다. 이익 여부와 옳고 그름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먼저 파이가 커져야 가져갈 몫이 커진다. 기회의 평등이 그 전제 조건이다. 키워야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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