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한중 수교 27년 회고와 새로운 4.0 협력 시대

입력 2019-09-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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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중국경영연구소장

1992년 8월 24일 한중 양국이 수교한 후 올해로 27주년이 되었다. 흔히 한중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중국 고사성어에 비유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라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뜻한다. 그만큼 한중 양국은 문화적 동질성과 지리적 근접성을 기반으로 짧은 시간 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양국 관계는 매우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중국이라면 모든 것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혐중·반중(Sinophobia) 현상과 중국몽(Chinese Dream)으로 대변되는 중국식 패권주의가 한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른바 ‘차이나포비아’가 한국 내에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역사를 둘러싼 동북공정 문제와 미세먼지, 불법조업 등 여러 이슈로 인해 중국을 싫어하고 더 나아가 중국 관련 모든 요소를 혐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북핵 문제로 인해 시작된 사드 이슈가 한중 양국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런 정치외교적 이슈에 발목이 잡혀 한중 양국 간 경제협력도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사드 사태 이후 롯데마트 철수, 삼성 스마트폰 및 현대·기아 자동차의 중국시장 점유율 하락 등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대부분 부정적인 뉴스로 점철되어 있다. 어느덧 중국시장은 한국 기업에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중국시장에 대한 환상 깨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한중 관계 27년을 회고해 보고, 새로운 한중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8월 한 달간 중국 여러 도시를 돌며 중국 내 산·관·학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한중 양국 모두 동질성 회복과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7년의 한중 관계를 회고해 보면 크게 4단계로 진화되어 왔다. 1단계는 한중 관계 1.0시대(1992~2000년)로 양국이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고 협력한 시대였다. 선린우호 관계에서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단계별로 격상되면서 양국 관계는 상호 필요에 의해 함께 성장하였다. 무엇보다 경제 관계는 서로 충돌이 없는 산업 간 분업구조를 통해 상호보완적 관계를 최적화했던 시대였다. 2단계 한중 관계 2.0시대(2001~2011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기반으로 정치외교적으로 더욱 밀접해지고, 경제적으로 양국 간 협력 분업체계가 더욱 심화 확대되는 시기였다. 특히, 한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가 급물살을 타며 이른바 ‘묻지마 투자’가 진행되었다. 중국시장은 우리에게 황금알을 캐는 가장 큰 시장이었다.

3단계 3.0시대(2012~2017년)는 한중 관계의 최고 절정기와 퇴보기를 함께 경험하는 이른바 ‘한중관계의 롤러코스터 시대’였다. 2015년 9월 미국과 일본 등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중국의 항일 전승절 행사에 서방국가로는 유일하게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여 톈안문광장에서 열린 중국의 군사 열병식을 관람했다. “지금 한중 관계는 양국이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할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최고조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중국 관료와 기업인들이 필자한테 한 말이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중국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는 시기로서, 경제 협력도 과거 가공무역 형태의 단순 협력에서 14억 내수시장 진출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사드 사태가 발생하며 한중 관계는 급속도로 위축되기 시작했고, 정치·외교·사회·문화 등 모든 협력 관계가 멈춘다. 특히 경제 관계에서는 사드 사태의 후폭풍으로 롯데를 비롯해 많은 한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은 시기였다. 또한 이와 맞물려 중국 산업의 기술경쟁력이 급속히 성장하며 이전의 협력 분업 구조에서 본격적으로 경쟁관계로 진입하면서 한중 간 산업기술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한중 관계 4.0시대(2018~현재)는 미중 간 패권전쟁과 한일 간 무역마찰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사드 이슈가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한중 간 협력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상태이고, 한국은 미중 간 패권 다툼 속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일 간 마찰로 인해 중일 간 경제협력이 가속화되면서 코리아 패싱까지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한중 수교 27주년을 기점으로 한중 양국 모두 새로운 협력의 불씨를 살리려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지난달 21일 베이징에서 만난 양국 외교장관은 한중 수교 27주년을 맞이하여 양국 간 쌓아온 협력의 경험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공고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지금처럼 내생 변수가 아닌 외생 변수에 따라 요동치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한중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한중 관계의 돌파구는 다가올 시진핑 주석의 한국 국빈 방문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한중 관계 4.0시대 구축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지금의 사면초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순망치한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시기이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하며, 3,000여 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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