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광복절 인가?" …'8·15 사면' 논란

입력 2008-08-12 16:44 수정 2008-08-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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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 예외ㆍ경제살리기 효과 여전히 의문

12일 63주년 광복절 맞이 대대적인 사면이 이뤄진 가운데 전현직 대기업 총수 대상자들과 관련해 법과 원칙의 형평성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살리기 명분에서 행해진 기업인 사면과 관련 과연 그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면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형 확정이 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현직 재계 총수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이번 사면 확정을 계기로 경제살리기에 주력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특히 현직에서 물러나 이미 야인이 된 전 재계 총수들도 이번 사면에 대거 포함됐다. 이들의 경우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부실 경영과 사기대출 등으로 국가 경제를 악화시켰던 장본인들로 수년간 사면 대상자에서 낙방된 끝에 이번에 확정된 것.

하지만 이번 사면을 두고 청와대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내에서도 이견이 표출돼 왔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유전무죄'또는 '유전사면'이란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 청와대 한나라당내서도 막판까지 이견(?)

이번 사면을 두고 청와대와 집권당인 한나라당 내 의원들간에도 이견을 보여 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면 발표 당일인 1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업인들의 사면에 대해 일각에서 비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기업인들이 해외활동에 불편을 겪고,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결단을 내렸다"고 표명했다.

또한 대통령은 "이번 사면은 현 정부 출범 이전에 법을 어긴 사안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새 정부 임기중 발생하는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공직자와 기업인을 불문하고 단호히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기업인들의 경제 범죄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

하지만 사면 결정이 이뤄지기 전날까지만 해도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내에서도 관련 기업인 사면과 관련해서는 중지가 모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송광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1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광복절 틀별 사면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경제인들에 대한 '사면불가' 입장을 밝혔다.

송 의원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지난 6월에,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5월, 박건배 전 해태 회장은 지난 3월에 각각 형이 확정된 사람들로 형 확정후 5개월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면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것은 기업인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펴도록 하자는 것이지 법 위반을 하는 기업인까지 도와주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청와대가 확정한 최종 사면자 명단에서는 송 의원이 거론한 박건배 전 회장만 빠졌다. 박 전 회장은 현직 총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빠졌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몽준 최고위원도 지난달 말 "기존 화이트칼라 범죄는 엄중대응 해야 한다는 입장과 일관성이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말에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적절히 통제하자는 취지로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한 사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같은 사면법 개정논의를 위해 개정안을 제출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상당수는 사면심사위원회 신설뿐만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경가법)의 배임,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 특별사면을 금지하자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입법발의한 바 있었다.

현재 한나라당 소속 18대 국회의원 중에서 특경가법(배임횡령 등) 위반자에 대해서는 특별사면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는 16명.

이번 사면에서는 보복 폭행으로 폭력범으로 분류된 한화 김승연 회장 외에는 기업인 대부분이 특경가법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면 공식 발표가 이뤄진 12일 한나라당은 윤상현 대변인을 통해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뇌에 찬 큰 결단으로 받아들이며 환영한다"며 "비록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에 부정적 인식이 있지만 사면은 용서와 관용의 결단"이라고 청와대 입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 야권ㆍ시민단체 반응 싸늘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면을 두고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지 않은 인사를 비롯해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인사,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재벌 총수들이 포함된 사면은 국민적 반감만 불러 일으킬 뿐"이라고 혹평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의 사면권은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뤄질 때만 국민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역대 정부가 경제살리기 라는 명분으로 경제인들에 대해 사면권을 남발하며 사면권을 숱하게 남발해 왔지만, 경제가 활성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대변인은 "적어도 부정부패 사범, 반인륜 범죄 사범, 형기의 3분의 1을 마치지 않은 자 등에 대해서는 사면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석수 창조한국당 대변인도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꾸짖는 선량한 촛불시민들에게는 벌금으로 엄포를 놓고 있는 정부가 왜 재벌총수들에게는 왜 그렇게 말랑말랑한지 과연 '재벌프랜들리' 정부임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형 확정이 된 지 불과 2~5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비리재벌 총수들을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반시장주의적 처사다"며 "국민의 법의식에 반하고, 재계의 논리 그대로 단행된 이번 특별사면이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실련은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는 길은 악성 경제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책임을 물어 경제 질서와 사법질서를 바르게 세우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법과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공약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사면권 남용은 현 정부의 법치주의도 극소수 재벌총수를 위한 왜곡된 이중잣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라며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서민들의 생존권적 불법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더 이상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법과 원칙을 훼손하는 사면으로 경제질서를 훼손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해마다 반복된 기업인 사면 그 결과는

청와대는 결국 경제살리기라는 큰 틀과 현 정부 출범 이전 법을 어긴 사안이라는 점을 들어 새정부 들어선 이후 이뤄진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처리할 것이라는 논리로 경제인들에 대한 사면 명분을 정당화시켰다.

하지만 이를 두고 과연 얼마나 실효성을 가지고 지켜질지는 과거 정권 사례를 통해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모두 9차례 사면을 단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선 후보 시절 사면권을 엄격하게 행사하겠다고 공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중 각각 8차례나 사면을 단행했다.

그때마다 나왔던 명분역시‘경제살리기’라는 똑같은 이유로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대거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경제가 살아나지도 않았으며 국경일마다 되풀이된 사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업인들의 범죄는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면에는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방만경영과 과도한 차입으로 쓰러져 재계 총수직을 떠난 야인이 된 과거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도 이뤄졌다. 이들은 자신이 과거 총수로 있었던 기업들에 대한 부실경영으로 결국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케 한 장본인이며 결국의 국민의 혈세를 낭비토록 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사면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엄상호 전 건영그룹 회장 등이 그들이다. 특히 이들은 지난 몇해 동안 줄곧 사면대상으로 경제 단체들이 과거 정부를 대상으로 제안해 왔지만 번번이 제외된 끝에이번에 포함됐다.

경제살리기와 화합이라는 명분에서 단행된 기업인 사면과 관련 앞으로의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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