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명분이 없다 아입니꺼, 명분이”

입력 2019-09-09 18:07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종화 정치경제부 기자

“명분이 없다 아입니꺼, 명분이.”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조폭 최형배는 무리한 싸움을 요구하는 친척 최익현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압박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처지도 비슷하다. 개도국 지위를 주장할 명분이 궁색하다. 국민소득이나 무역 규모 등 한국의 성적표가 너무 좋아서다. 개도국 혜택을 받는 농업 부문도 그렇다. 농가 소득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농업 생산 비중 등 농업 지표에서 한국은 선진국들과 큰 차이가 없다.

설득 논리가 없다 보니 개도국 지위 문제는 한국 외교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일본이 ‘덩치에 안 맞게 개도국 혜택을 누리는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한국의 개도국 지위를 자국의 경제 보복을 옹호하는 논리로 사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무리하게 개도국 지위를 고집하려 들면 명분은 물론 실리까지 잃게 된다.

지금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농업 관세·보조금 혜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차기 농업 협상까진 기존 혜택을 누리면서 연착륙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시급한 건 농업 직접지불금(직불금) 제도 개편이다. 쌀 농가의 경우 소득의 10% 이상을 변동 직불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도국 지위를 잃으면 변동 직불금 예산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정부와 국회에서 고정·변동 직불금, 논·밭 직불금을 통합해 공익형 직불제 도입을 논의했지만, 여야 정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익형 직불금은 WTO의 보조금 규제를 피할 수 있는 해법으로 꼽힌다.

근본적인 농가의 소득구조 개편도 필요하다. 농업과 식품산업 간 연계를 강화하고 해외 판로를 넓혀야 한다. 보조금 의존도를 줄이고 외풍에 대한 내성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다.

피할 수 없는 짐이라면 그 무게를 최대한 줄일 방법을 찾는 게 차선이다. 명분을 잃으면 실리도 챙길 수 없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트럼프 관세 위협에… 멕시코 간 우리 기업들, 대응책 고심
  • 韓 시장 노리는 BYD 씰·아토3·돌핀 만나보니…국내 모델 대항마 가능할까 [모빌리티]
  • 비트코인, 9.4만 선 일시 반납…“조정 기간, 매집 기회될 수도”
  • "팬분들 땜시 살았습니다!"…MVP 등극한 KIA 김도영, 수상 소감도 뭉클 [종합]
  • '혼외자 스캔들' 정우성, 일부러 광고 줄였나?…계약서 '그 조항' 뭐길래
  • 예상 밖 '이재명 무죄'에 당황한 與…'당게 논란' 더 큰 숙제로
  • 이동휘ㆍ정호연 9년 만에 결별…연예계 공식 커플, 이젠 동료로
  • 비행기 또 출발지연…맨날 늦는 항공사 어디 [데이터클립]
  • 오늘의 상승종목

  • 11.2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0,869,000
    • -1.68%
    • 이더리움
    • 4,654,000
    • -3.5%
    • 비트코인 캐시
    • 689,000
    • -1.78%
    • 리플
    • 1,927
    • -4.7%
    • 솔라나
    • 322,000
    • -3.82%
    • 에이다
    • 1,296
    • -6.09%
    • 이오스
    • 1,104
    • -2.82%
    • 트론
    • 269
    • -2.89%
    • 스텔라루멘
    • 622
    • -12.27%
    • 비트코인에스브이
    • 92,000
    • -2.95%
    • 체인링크
    • 23,980
    • -4.35%
    • 샌드박스
    • 852
    • -14.1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