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싱어가 이끄는 엘리엇은 9일(현지시간) 32억 달러(약 3조8100억 원)어치 지분 보유 사실을 공개하면서 AT&T 측에 경영전략 변경과 새로운 이사 지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AT&T의 시가총액이 2710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엘리엇 지분율은 1%를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수 지분에도 다른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는 아이디어로 여러 회사를 쥐고 흔들었던 엘리엇의 이력을 살펴보면 AT&T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엘리엇은 39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아시아에 폭넓게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의 주주총회 대결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펀드이며 셈프라에너지, 닐슨홀딩스, 페르노리카 등 전 세계 기업의 변화를 추진했다.
엘리엇은 이번 서신에서 AT&T의 미디어와 통신 융합 전략에 반기를 들면서 회사의 오랜 인수·합병(M&A) 전략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부 자산을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엘리엇은 AT&T에 특정 사업부 매각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디렉TV 위성 서비스와 멕시코 무선사업을 포함해 미래 방향에 맞지 않는 사업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AT&T가 타임워너를 소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전략적 근거를 아직 밝히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AT&T는 지난 7월 워너미디어 콘텐츠를 바탕으로 ‘HBO맥스’로 불리는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발표했다. 내년 봄 데뷔 예정인 HBO맥스는 넷플릭스, 아마존닷컴과 디즈니 플러스(+), 애플TV와 스트리밍 시장 주도권을 놓고 정면 격돌하게 된다.
엘리엇은 워너미디어에 대해서는 칭찬했지만 “합병 추진이 처음으로 발표된 지 3년 이상이 지난 후에야 AT&T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발표했다”며 “이는 AT&T가 전략을 놓고 계속 혼돈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계획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NYT는 엘리엇이 AT&T에 반기를 든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국 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풀이했다. 엘리엇 설립자인 폴 싱어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반(反) 트럼프 진영에 거액을 기부해 트럼프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2017년 1월 트럼프 취임식 당시 1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화해했다.
NYT는 엘리엇이 차세대 이동통신망인 5G 가능성에 주목해 AT&T 경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봤다. 트럼프는 중국 화웨이테크놀로지를 제재하는 등 국가안보에 대한 5G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엘리엇은 “5G라는 새로운 기술로의 전환은 AT&T가 이동통신 시장의 리더십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어설프게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드느니 5G에 집중하라고 쏘아붙인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