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실상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이르면 다음달 발표

입력 2019-09-19 16:33 수정 2019-09-1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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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논리 마련 어려움 반영된 듯…국내 농업 체질 개선 병행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제네바/신화뉴시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제네바/신화뉴시스
정부가 사실상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결정했다.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다음 달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10월 중순 열리는 WTO 이사회에 맞춰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금명 간 개도국 지위 포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WTO 협정상 개도국은 보조금과 관세 제도 등을 운영할 때 선진국의 3분의 2를 이행하면 된다. 한국은 농업 부문에서만 개도국 혜택을 받고 있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한 것은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데다 이를 방어할 논리 마련도 어렵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회원국 △1인당 국민소득 1만2056달러 이상 국가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 등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네 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트럼프의 요구 이후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잇따라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면서 한국이 받은 압박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농가 소득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농업 생산 비중, 전체 인구 대비 농민 수 등 농업 지표에서도 한국은 선진국과 거의 차이가 없다. 국제 사회에 개도국 지위를 지키겠다고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이유로 정부는 대외적으론 '신중 검토'를 표명하면서도 개도국 지위 포기를 위한 군불을 떼왔다. 김용범 기재부 제1차관은 지난달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WTO에서 농업협상이 새롭게 진행될 경우, 개도국 지위를 보장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10월 초까지 이 같은 물밑 작업과 관계 부처 회의, 당정 협의 등을 마무리한 후 WTO 이사회를 즈음해 최종 입장을 대외적으로 발표한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10월 23일이면 트럼프가 제시한 WTO 개도국 규정 개정 데드라인이 끝난다는 점도 정부 일정에 영향을 줬다. 일부 부처는 이달 UN총회를 계기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개도국 지위 논의를 끝내자는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잃으면 국내 농업엔 큰 변화가 일 수밖에 없다. 당장은 기존 농업 보조금ㆍ관세 제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차기 농업 협상이 열리면 선진국 수준에 맞춰 제도를 개편해야 해서다. 이 때문에 정부에선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비한 농업 체질 개선 대책도 함께 마련 중이다. 공익형 직불금 도입, 수급 조절 제도 개선, 농촌 개발 활성화 등이 주요 내용으로 전해졌다.

국회 설득도 과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촌 표심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이달 초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고위급 인사가 개도국 지위 문제 논의를 내년 중순 이후로 미루는 것도 논의했다. 다만 큰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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