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느 재벌의 양형 이유

입력 2019-09-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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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사회경제부 기자

양형은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에 대해 형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판사가 형을 정할 때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기준을 따르는데 특별양형인자와 일반양형인자로 구분해 감경요소와 가중요소를 따지도록 한다. 문제는 횡령ㆍ배임 범죄 피고인에게 유리한 감경요소로 '피해 회복'과 '처벌 불원'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양형 기준에서 말하는 피해 회복은 빼돌린 돈을 다시 돌려놓는 것이고, 처벌 불원은 피해를 본 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이나 재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요소다. 대한민국에서 회사가 사주의 처벌을 원한다는 게 가능한 것일까.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재벌이 감옥에 들어갈 위기에서 횡령액도 갚지 못할까.

"피해 금액을 변제해 상당 부분 피해가 회복됐고, 피해 회사가 처벌 불원 의사를 표명해..."

한 대기업 오너 일가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장이 말한 양형 이유다. 재벌 '필살기' 피해 회복과 처벌 불원 두 가지가 모두 나왔다. 법원이 인정한 횡령액은 약 30억 원이다. 양형 기준에 따르면 해당 범죄의 법정형은 2~5년이다. 그러나 집행유예 참작 사유 2가지가 모두 적용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사유로 집행유예를 받은 재벌이 어디 한 두사람인가. 다수의 재벌이 피해를 회복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국민들의 '유전무죄'란 자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사법 불신은 이런 데서 시작한다. 법원이 재벌에 관대하다는 국민의 시선을 끝내기 위해서는 양형 기준의 세부적 지침이 필요하다. 지난 5월 활동을 시작한 7기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에 기대를 걸어본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형평성을 맞추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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