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세계 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글로벌 공급망의 구축이 이끌었는데 그 가치사슬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가 간 협업을 통한 기술과 지식의 공유가 초(超)글로벌화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이 성장모델이 끝나간다고 그는 진단했다. 세계는 공급과 수요의 동시 감퇴로 침체가 장기화하는 복합불황에 빠져들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가져온 충돌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1939∼45)을 거치면서 경제와 군사력의 패권을 굳혔다. 전쟁 이전 세계는 극심한 보호주의에 휩싸였었다. 미국은 1947년 GATT(관세·무역 일반협정)체제를 출범시켜 국가 간 관세장벽과 수출입 제한을 허물었다. 이후 글로벌 교역량이 급속히 늘고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자본주의가 번영했다. GATT는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로 발전한다. 한국이 거둔 이만한 경제적 성취도 지난 수십 년 자유무역 시스템에 빨리 올라 타 최대한 이점을 누린 덕택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미국주도 질서를 위협하고 나섰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14조2200억 달러(2018년)로 미국 21조3400억 달러의 3분의 2까지 따라잡았다. 황제의 위상을 굳힌 시진핑(習近平)은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워 21세기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야망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가 일으킨 관세와 기술전쟁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예고적 공격이다. 트럼프가 아니라도 미국의 패권전략은 발동할 터였다고 봐야 한다.
거대 전쟁의 서막(序幕)일 수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기존 패권국과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은 이제 싸움의 시작임을 말한다. 중국의 취약한 고리인 금융, 에너지분야 등으로 확전과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WTO는 무력화되고 강대국들의 각자도생, 근린궁핍화가 기승을 부린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트럼프 따라 한국을 찍어 누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헝클어지는 혼돈의 시대다. 중국의 경제력은 머지않아 미국을 능가할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패권이 무얼 의미하느냐에 있다.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정(共和政)과 투명한 시장경제를 추구한 적이 없다. ‘국가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 경제의 시장제도에서 유리한 것만 골라 편승한 결과가 지금 중국 경제의 힘이다. 일당독재 공산당이 국가의 주체로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인민의 일상생활, 시장도 마음대로 통제한다. 국익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反)평화·반인권적 국가폭력에도 거리낌이 없다. 중국몽은 ‘강한성당’(强漢盛唐)의 부활인데, 그건 자신 밖의 존재에 복속과 굴종을 강요한 역사였다. 패도(覇道)의 어두운 그림자다.
미국 헤게모니의 원천은 최강의 군사력과 중심 통화인 달러다. 그것만으로 인류 보편의 수용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미국의 힘은 공통어인 영어, 민주주의와 인권·자유의 존중, 시장경제 제도, 인류 삶의 형식을 바꾸는 기술혁신 역량 등의 총합(總合)이다.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를 쓴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핵심 가치로 꼽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다. 중국이 이런 공생(共生)의 규범을 갖고 있는가?
미·중 충돌은 깊고 오래가는 충격을 수반할 것이다. 최전선(最前線)이 한국이다. 지정학적 틈새에 낀 안보, 세계 경제지도의 변방(邊方)인 현실이 그렇다.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직면한 국가위기의 본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경제·안보의 리더십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세계 질서의 대전환기에 국가생존의 비전을 큰 눈으로 멀리 내다보는 통찰, 극복의 미래 전략을 고민하는 지성적 리더십이 있는가? 그 희망이 있기는 한가? 대한민국 국민이 지난 반세기 동안 함께 일군 번영이 여기서 멈추고 쇠퇴의 길을 걷는 것 아닌지 암담하고 두렵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