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으레 예후를 묻곤 한다. 암도 발생한 부위에 따라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과 예후가 나쁜 절망적인 암으로 나뉜다고 한다. 예후는 ‘豫後’라고 쓰며 각 글자는 ‘미리 예’, ‘뒤 후’라고 훈독한다. ‘뒷일을 미리 예측한다’는 뜻이다. 영어 ‘prognosis’를 번역한 의학전문용어인데 ‘prognosis’는 그리스어의 pro(미리)와 gnosis(알다)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말로서 “어느 질환 또는 환자의 치료경과 및 결말에 대한 예측”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의학전문용어였던 것이 일반용어로 확산되어 요즈음에는 뒷일을 예상하는 거의 모든 경우에 다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과 극한대립이라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예후가 좋지 않은 난치병이다. 조선시대에도 당파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임진왜란이라는 재앙을 당하였으며, 대한제국 시절에도 대원군과 민비가 맞서 싸우다가 한일병탄의 비극을 맞았고, 광복 후에도 새로운 점령군인 미국과 소련의 농간에 의해 남과 북, 좌와 우로 갈라져 싸우다가 결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동족상잔의 연장선상에서 아직도 서로 할퀴고 쥐어뜯으며 극한 대립 속에서 싸우고 있다. 정당은 물론 언론, 시민단체, 종교단체 심지어는 교수집단과 학생들까지도 편이 나뉘어 싸우고 있다. 대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지극히 근시안적인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렇게 싸우다가는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염려를 하면서도 여전히 싸운다. 분열된 국민 각자가 소아적 이익의 섶을 짊어지고서 불길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고약한 난치병을 앓고 있다.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훤히 볼 수 있을 텐데 역사의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소아적 이익에 매몰되어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거울을 더욱 밝게 닦고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