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보면 아이들을 위해 놀라운 헌신을 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부모 중에 본인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자녀의 인턴십을 주변에 요청했다면, 부럽기는 해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직 자기 자녀만의 미래를 위해 하지도 않은 인턴증명서를 만들거나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공정하지 않은 절차로 인턴십 기회를 준다면, 글쎄 그게 사실이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하는 사회지도층으로서 도를 넘어선 행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국가와 국민을 우선시해야 하는 민정수석이라는 준엄한 자리에 있는 동안 사적 이익을 위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모펀드에 투자했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망감을 넘어 할 말이 없어질 거 같다.
여하튼 수많은 논란 속에 이런저런 의혹을 받고 있던 조국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리고 과거 청문회처럼 조국이란 사람이 법무부 장관으로서 어떤 역량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능력적 검증은 진행되지 못했다. 대신 추정되는 사안들에 기반한 도덕적 결함들과 과거 언행에 배치되는 이율배반적 행동들에 대한 성토로 채워졌다. 청문회 내내 고성만이 오가는 난장판 청문회가 되었다.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 누구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못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으로 조국 장관은 임명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조국 장관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삭발 행렬이 제1야당의 당 대표를 필두로 이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번 사태로 많은 좌절과 상처를 받은 청년 세대들은 대학가에서 조국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중장년 보수 진영의 참여로 진행되는 행사라고 몰아세우며 학생들의 상처를 외면하고 또 한번 그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단지 누군가가 법무부 장관으로 적합한지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런저런 사안들에 대한 정치권의 논쟁이 이제는 대한민국을 양분화·양극화로 몰아가고 있다. 진보와 보수, 친여 그룹과 반대 그룹,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이번 조국 사태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 정치 공세를 넘어 광범위한 규모의 양분화된 사회적 갈등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생산적이지 못한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아부으며 지쳐가고 있다.
나쁜 아버지들과 성숙하지 못했던 아버지들이 많았다. 그러나 훌륭한 어머니들은 아버지들의 폭행, 외도, 무능한 경제력 아래서도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를 나쁜 놈이라 헐뜯지 않았으며 자녀들을 선동해 아버지에게 함께 덤비고, 때리고, 심지어 가정에서 몰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려움 속에서도 어떤 인재가 돼야 하는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지를 강조하며 그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아버지를 설득하고 저항하며 때로는 싸웠다. 그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자녀들이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을 가득 채우고 있는, ‘누구 아니면 안 된다’, ‘나 아니면 안 된다’, ‘너는 절대 안 된다’라는 아우성 속 어느 곳에도 국민은 없다. 우리네 어머니처럼 국민을 지켜내고, 국민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어떤 희생의 역할도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우리는 소외된 슬픈 국민이 되어 나라의 주인 자리를 빼앗겨 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나라가 큰 시련에 빠졌을 때, 관군이 나라를 구한 나라가 아니라 민병이 일어나 나라를 구한 나라가 아닌가? 그런 사실을 정치권에서는 준엄하게 알아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