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브로커의 덫] 피해자 “수임료 대출 이자만 50만원...회생 중 빚만 더 늘어”

입력 2019-09-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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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에서 ‘수임료 대출’ 불법 소개

하이에나 무리가 서울 서초동 법원 골목을 배회한다. ‘회생 브로커’라는 이름의 하이에나 무리다.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신용불량자’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당장 돈이 궁한 변호사·법무사는 브로커와 한배를 탄 지 오래다. 수사기관도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단속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는 상황이다. ‘빚의 늪’에 빠진 신불자들은 서초동 하이에나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 수임료 낼 수는 있어요?”

회생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박모(28·여) 씨가 얼마 전 법률사무소 사무장에게 들은 말이다. 박씨는 최근에야 법률사무소에서 수임료 대출을 소개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걸 알았다. 회생·파산 신청자들이 활동하는 카페에서 관련 글을 읽은 것이다. 하지만 박 씨는 이미 수임료 대출을 받은 상태. 설마 하는 마음에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사무장의 강경한 반응에 박 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박 씨가 수임료 대출을 권유받은 것은 올 초다. 그는 “사무장이라는 사람이 전화해 이것저것 묻더니 갑자기 수임료 얘기를 꺼냈다. 형편이 안 돼 분납을 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건 힘들다고 답했다”고 회상했다. 이 사무장은 선심 쓰듯 “자기가 아는 대부업체가 있는데 수임료를 대출받게 해주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10분 뒤 자신을 ‘00브릿지 대부’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 씨는 “이런저런 상황을 묻더니 바로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따로 서류를 쓰지도 않았다”고 했다.

한창 채권자의 추심에 힘들어하던 박 씨는 회생절차를 빨리 신청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자 24%, 6개월 만기.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율에도 박 씨는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30만 원인 수임료는 280만 원까지 불어났다. 박 씨는 “이제야 그게 불법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회생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더 힘들다.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우모(29·여) 씨는 최근 재회생에 들어갔다. 면책을 불과 6개월 앞두고서다. 우 씨는 “5년 전 회생에 들어갈 때 생활 형편에 비해 변제율이 너무 높았다”고 토로했다. 당시 우 씨는 어머니와 함께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월 수익은 많아야 100만 원. 그마저도 불규칙했다. 우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신용불량자였다. 1997년 구제금융(IMF)은 우 씨 가족도 휩쓸었다. 우 씨는 “20대 초반부터 생활고에 시달렸다. 부모님 이름으로 대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내 이름으로 돈을 빌려 생활비에 보탰다”고 회상했다.

당시 우 씨는 5년 동안 월 28만 원씩 갚는 것을 조건으로 개인회생 절차를 인가받았다. 최저생계비는 5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당시 사무장은 “법원에서 이렇게 정해줬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만 말했다. 우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호프집까지 문을 닫게 됐다”며 “매달 돈은 떨어져 갔다. 어쩔 수 없이 회생 중 대출을 몇 번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사기까지 당한 우 씨는 끝내 회생절차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

폐지 소식이 들리자 추심업체들은 재빨리 우 씨에게 상환을 독촉했다. 서둘러 다른 사무소를 통해 재회생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 씨는 LPG 배관공사업체에서 사무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법원에서는 현재 월 소득 195만 원을 기준으로 매달 93만 원씩, 5년간 변제하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우 씨의 계약은 당장 올해 말에 끝난다. 이번에도 사무장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했다. 그는 “계약 연장도 불투명한 상태인데 회사가 내년에는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 내년부터 소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회생 중에 빚만 늘고. 악순환만 이어지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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