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돼지열병이 고마운 그들에게

입력 2019-09-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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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림 자본시장1부 기자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이 처음으로 발표된 17일부터 돼지열병 관련주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방역 소독, 대체 식품군 등 분야도 다양하다. 주가가 급등하자 해당 기업 최대주주들이 매도에 나서 조용히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강승조 이글벳 회장은 주가가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18일, 보유 주식 15만 주를 장내 매도해 16억 원가량을 현금화했다. 아들인 강태성 사장은 30만 주를, 강 회장의 부인인 김영자 전무 역시 15만 주를 팔았다. 강 회장 일가가 챙긴 현금은 64억 원 규모다. 이외에도 백광소재, 고려시멘트, 체시스 등 돼지열병 테마주의 최대주주들이 지분을 내놓으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최대주주의 지분 매매는 투자자의 이목을 끈다. 상징적 의미는 논외로 하더라도 경영진을 겸직하는 경우도 많아 이들은 내부 정보 접근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매입할 때, 투자자는 긍정적 주가 신호로 이해한다.

최대주주의 지분매집은 투자자에게 ‘그래, 뭔가 있구나’라는 믿음을 담보해주는 시장 신호와도 같다. 투자자가 임원 및 주요주주의 지분 공시를 주목하는 이유다.

동시에 하락장에서 지분매집은 책임경영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장 신호와도 같다. 주가 부양을 기대하기보다 투자자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오너의 ‘책임경영 의지’를 읽어서일 것이다.

반대로 상승장에서 최대주주의 지분 매도를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 오너의 책임경영 의지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오너’보다 높아진 주가로 차액을 누리려는 ‘투자자’로서 먼저 읽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지금 이 순간이 이 종목의 최고점인가’ 하는 불안감 말이다.

최대주주가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매도 시기’가 아니다. 높아진 기업 가치 속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제고할지, 시장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런 고민이 기업가치를 높여주는 ‘책임경영’의 시작이다. 투자자들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기업 가치를 믿는 주주들에게 최소한, 배신감은 안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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