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악다구니 쓰는 세상

입력 2019-10-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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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중기IT부장

최근 내 눈을 의심하는 조사 결과를 접했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지난달 성인남녀 3289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성공과 부모의 능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부모의 도움으로 별다른 노력 없이 취업에 성공한 지인이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설문 조사를 살펴보자.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달 말 구직자 3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수저 채용’에 대한 설문조사다. 이 조사에서 ‘구직 과정 중 부모의 도움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특혜받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8.9%가 ‘절차 없이 바로 채용’이라고 답했다. 이어 ‘면접 절차만 거쳐 채용(26.9%)’, ‘서류 절차만 거쳐 채용(16.1%)’, ‘각 전형별 가산점(13.6%)’, ‘특혜를 받고 싶지 않다(4.4%)’ 순이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특히 이 설문조사에서 부모를 통한 특혜 채용·청탁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구직자 10명 중 7명은 ‘채용은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69.9%)’고 답했지만 반면,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능력도 스펙이다’라는 의견도 30.1%나 됐다. 게다가 ‘관심 있는 기업이 채용 비리로 문제가 된 곳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자 ‘채용 비리건과 무관하게 입사 지원한다(63.9%)’는 의견이 ‘채용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입사 지원을 피한다(36.1%)’는 답변보다 많았다.

그렇다.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러니 나도 부모(금수저) 덕에 쉽게 입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금수저 채용에 대해 어떠한 특혜도 받고 싶지 않다는 응답률 4.4%는 어쩌면 높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실제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가 아웃사이더인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의를 외치면서 한편으로 타협하고, 눈치를 본다. 이러한 타협 역시 대의를 위한 정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현실은 그러하다.

누군가는 광화문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서초동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몇 명이나 모였대?” 그냥 숫자만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까지 존재한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고 물으시는 건가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혀 귀 기울여 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지방에서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저 같은 사장은 이렇게라도 악다구니를 써야만 그나마 눈이라도 마주쳐 주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만난 중소기업 대표의 절규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 나름으로, 소상공인은 소상공인대로 할 말이 많다. 각자의 잇속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진일보를 위한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만 들어 달라는 아우성, 아니 악다구니뿐이다.

이제라도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 한발을 빼야 제대로 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늪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영상을 자주 본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관심을 끌 만큼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주 속에서 뭔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은 저기 창백한 불빛만으로 의문을 낳습니다. 우리 행성은 암흑으로 뒤덮인 우주 속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일 뿐입니다.”

하늘을 공부하는 이들은 겸손해진다고 한다. 광장도 좋지만 하늘을 보며 스스로가 악다구니를 쓰고 있진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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