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댓트립-명소①] '동백꽃'ㆍ'향수' 김유정·정지용 찾아…문학 속 그곳을 가다

입력 2019-10-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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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추천 10월에 가볼 만한 곳

▲김유정문학촌에 있는 김유정 동상.(사진제공=이하 한국관광공사)
▲김유정문학촌에 있는 김유정 동상.(사진제공=이하 한국관광공사)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니 여행을 가기도, 감성을 살찌우기도 좋다.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넣고 문학의 정취가 묻어나는 여행지를 찾아가 보자. 문학 속 그곳에서 작가의 마음과 작품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철 타고 떠나는 이야기 마을, 춘천 김유정문학촌 = 소설가는 가도 이야기는 남았다. ‘일제강점기 한국 단편소설의 축복’으로 평가되는 김유정(1908~1937). 서른 해를 채 살지 못하고, 가난과 폐결핵에 시달리다 떠난 그가 남긴 단편소설 30여 편은 살아 있는 우리말의 보물 창고다.

▲김유정 기념전시관 실내 전시실.
▲김유정 기념전시관 실내 전시실.

김유정이 태어난 춘천 실레마을의 김유정문학촌 곳곳에서 그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수도권 전철 경춘선을 타고 가니 도로가 막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김유정문학촌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너른 잔디밭에 자리잡은 다양한 캐릭터가 손님을 맞는다.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에 나오는 주인공이 저마다 생생한 표정과 몸짓으로 소설 속 장면을 연출한다.

▲생가 창고 처마 아래 닭이 알낳는 둥지가 보인다.
▲생가 창고 처마 아래 닭이 알낳는 둥지가 보인다.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김유정이 태어난 집이다. 실레마을 제일가는 지주 집안이던 김유정의 생가는 웬만한 기와집보다 크고 번듯한 한옥인데, 지붕에 초가를 올렸다. 당시 초가 일색이던 마을에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고 한다. 중부지방에서 보기 힘든 ‘ㅁ자형’으로 만든 것도 집 안 모습을 바깥에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다. 네모난 하늘이 보이는 중정 툇마루에서 문화해설사가 하루 일곱 번(11~2월은 여섯 번)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가 앞에는 아담한 연못과 그림 같은 정자가 있고, 닭싸움을 붙이는 소녀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유정의 조각상이 눈에 띈다. ‘동백꽃’의 한 장면은 이렇게 태어났을 것이다.

실제로 김유정의 많은 작품이 이곳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쓰였다. 덕분에 김유정문학촌 곳곳에는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 등 이름만 들어도 재미난 실레이야기길 열여섯 마당이 펼쳐진다.

▲김유정 생가 앞 연못과 정자.
▲김유정 생가 앞 연못과 정자.

김유정 생가 길 건너편에 커다란 솥 모양 벤치가 보이고, 그 옆으로 단편 ‘솟(솥)’의 마지막 장면이 실물 크기 동상으로 재현된다. 들병이와 바람이 나서 집안 재산목록 1호인 솥단지를 훔친 근식이와 솥을 찾으러 달려온 아내, 아기 업은 들병이와 그 남편까지 어우러진다.

▲소설 '봄봄' 속 점순이의 키를 재는 장면.
▲소설 '봄봄' 속 점순이의 키를 재는 장면.

만석꾼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다가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한 김유정도 그렇다. 어려서 경성으로 간 김유정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당대 명창이자 명기 박녹주를 쫓아다니느라 결석이 잦아 제적된다. 낙향해 야학을 열었다가 다시 상경, ‘산골 나그네’로 등단하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다.

이 과정에서 집안이 점점 기울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김유정은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 것이다”라는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스물아홉 한창 나이에 세상을 버린다. 김유정의 삶과 작품 이야기는 생가 옆 김유정기념전시관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ㅁ자' 모양의 김유정 생가.
▲'ㅁ자' 모양의 김유정 생가.

김유정이야기집에서는 ‘봄.봄’과 ‘동백꽃’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할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과 사진을 찍는 포토 존, 김유정의 작품을 다양한 버전으로 갖춰놓은 유정책방도 재미있다. 김유정이야기집 옆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한지 공예, 도자기, 민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들어섰다.

▲김유정이야기집 안에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시설을 갖췄다.
▲김유정이야기집 안에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시설을 갖췄다.

김유정문학촌 인근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많다. 2010년 수도권 전철 김유정역이 생기면서 신남역이 이름을 바꾼 옛 김유정역은 여러 부대시설을 갖추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1939년 개통한 경춘선 신남역이 김유정역(구역사)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1939년 개통한 경춘선 신남역이 김유정역(구역사)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우리가 떠나온 옛 고향 찾아가는 길, 옥천 정지용문학관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년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노래 ‘향수’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였다. 이 노래 덕분에 정지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 반열에 올라섰고, 잊히고 사라진 고향 풍경이 우리 마음속에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옥천 구읍의 소박한 풍경.
▲옥천 구읍의 소박한 풍경.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곳은 옥천 구읍이다. 예전에는 옥천의 중심지였지만, 1905년 금구리 일대에 경부선 옥천역이 들어서며 시나브로 쇠락해 구읍이라 불린다. 구읍에 들어서면 가게는 낡았지만, 정지용의 시어를 사용한 세련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담배 가게에는 ‘오월 소식’ 중 “모초롬 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란 구절을 간판처럼 걸었다.

▲정지용 생가의 방 안 모습.
▲정지용 생가의 방 안 모습.

실개천 옆에 자리한 초가지붕이 정지용 생가다. 생가 앞에는 ‘향수’ 시비가 있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 세 칸 초가와 창고가 마주 본다. 소박한 마루에 앉아 ‘향수’를 떠올린다.

▲정지용 생가 전경.
▲정지용 생가 전경.

안방에는 동시 ‘호수’가 걸려 있다. 정지용의 많은 시 중에 동시는 짧고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호수’는 절창이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정지용 생가에서 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놓인 청석교.
▲정지용 생가에서 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놓인 청석교.

단층 건물인 정지용문학관은 크게 전시실과 문학체험 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소곳이 앉은 정지용 밀랍인형이 보인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붓글씨로 ‘향수’를 적은 액자가 눈에 띈다.

▲'향수' 시비가 서있는 정지용 생가.
▲'향수' 시비가 서있는 정지용 생가.

‘정지용 시인과 그의 시대’ 안내판은 정지용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지용은 1902년에 태어나 열두 살에 결혼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ㆍ프란스’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향수’, ‘고향’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조선 문단의 대표 시인으로 떠올랐다.

▲정지용문학관 전경.
▲정지용문학관 전경.

정지용은 빼어난 후배 시인을 발굴한 ‘문장’ 심사위원으로도 유명하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이상을 추천해 등단시켰다.

▲정지용이 후배 조지훈에게 보낸 편지 사본.
▲정지용이 후배 조지훈에게 보낸 편지 사본.

정지용의 작품을 전시한 곳에서 귀한 초판본 시집을 만난다. ‘백록담’의 빛바랜 사슴 그림 표지를 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정지용문학관에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시설은 시 낭송실이다. 노래방 같은 공간에서 마이크를 잡고 ‘향수’, ‘백록담’, ‘유리창 1’, ‘고향’, ‘홍시’ 등 시인의 명작을 낭랑하게 읽어볼 수 있다.

▲정지용문학관 로비.
▲정지용문학관 로비.

◇가난 속 피워낸 따뜻한 동화 세상, 안동 권정생동화나라 = 안동 권정생동화나라는 낮은 마음가짐으로 마주하는 공간이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 주옥 같은 작품으로 아이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권정생 선생의 문학과 삶이 담겨 있다.

▲강아지똥 조형물.
▲강아지똥 조형물.

권정생동화나라는 선생이 머무르며 집필 활동을 한 일직면의 한 폐교를 문학관으로 꾸몄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유품과 작품,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글을 써 내려간 삶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이곳에서 ‘좋은 동화 한 편은 백 번 설교보다 낫다’는 선생의 신념을 찬찬히 되새길 수 있다.

▲권정생 동화나라 전경.
▲권정생 동화나라 전경.

권정생동화나라가 자리한 망호리는 ‘몽실 언니’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권정생동화나라 초입에 넓은 운동장과 놀이터가 있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엄마 까투리 등의 조형물도 건물 곳곳에서 만난다. 건물 벽면을 채운 커다란 강아지 똥 모형과 선생의 추억이 깃든 교회 종모형이 눈길을 끈다.

▲몽실언니 조형물과 권정생 동화나라.
▲몽실언니 조형물과 권정생 동화나라.

1층 전시실에는 권정생 선생이 남긴 작품과 유품이 있다. 단편 동화 ‘강아지 똥’ 초판본, 선생이 쓴 일기장과 유언장, 가난을 견뎌내며 살아온 발자취가 시기별로 전시된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선생은 청소부로 일한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가져온 헌책을 읽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해방 이듬해 귀국해서 한국전쟁을 겪었고, 나무 장사와 고구마 장사 등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갔다. 청년 시절 결핵을 앓았고, 한쪽 콩팥과 방광을 들어내기도 한 선생에게 가난, 병마와 함께한 세월은 글을 쓰는 자양분이었다.

▲권정생 선생과 유언장.
▲권정생 선생과 유언장.

조탑마을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문간방에 머무른 선생은 죽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 한 권 남기려 했다. ‘강아지 똥’은 그렇게 탄생한 작품으로,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당선됐다. 전시실 곳곳에는 선생의 책이 설명과 함께 전시된다. 전쟁의 참상 속에 아이들의 삶과 인간미를 그린 ‘몽실 언니’, 산불 속 까투리의 모성애를 담은 ‘엄마 까투리’ 외에 ‘무명 저고리와 엄마’, ‘황소 아저씨’ 등 유작 수십 편을 만날 수 있다.

▲권정생 선생 일기장.
▲권정생 선생 일기장.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지만, 선생은 불쌍한 어린이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전시실에 보관된 유언장에는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적혀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권정생 선생이 살던 오두막집을 실물 그대로 재현했다. 하루 글을 쓰면 이틀 누워 쉬어야 했지만, 선생은 사람 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단칸방에서 낮은 책상에 의지해 ‘점득이네’, ‘랑랑별 때때롱’ 등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비료 포대로 만든 부채, 몽당연필 등 검소한 삶을 보여주는 흔적이 애잔하다.

▲강아지똥 초판본.
▲강아지똥 초판본.

1층 복도에는 선생이 살아온 길을 담은 사진이 전시된다. 사진 속의 선생은 늘 편안하고 따뜻하게 웃는 얼굴이다. 권정생동화나라에는 도서실과 서점이 마련되어 선생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다. 복도 한쪽에 단편 동화 ‘해룡이’를 그림으로 풀어낸 김세현 화가의 작품 50여 점도 전시 중이다.

▲권정생 선생의 작품들.
▲권정생 선생의 작품들.

권정생동화나라는 우표와 엽서를 판매해 느린우체통으로 편지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동화나라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북녘 어린이 돕기에 쓰인다. 건물 2층에 단체 관람객을 위한 숙박시설과 강당이 있으며, 놀이터 옆에 숲속도서관도 문을 열었다. 권정생동화나라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이며, 입장료는 없다(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동화나라 1층 복도.
▲동화나라 1층 복도.

권정생동화나라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달리면 권정생 선생이 거주한 조탑마을에 닿는다. 선생은 이곳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문간방에 살며 글을 썼다. 교회와 종탑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선생은 1983년 마을 청년들이 빌뱅이언덕 아래 마련해준 작은 집으로 이사한 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며 홀로 지냈다. 담벼락도 대문도 없는 집은 단출한 이정표와 텃밭, 개집, 변소 등이 있으며, 단칸방 문고리에는 누군가 두고 간 꽃이 매달렸다.

▲조탑마을 권정생 선생의 집.
▲조탑마을 권정생 선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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