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힘든 분야가 신약 개발입니다. 경험이 부족한 한국 제약바이오가 겪고 있는 실패는 성장하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인 거죠.”
스위스 노바티스 연구원을 거쳐 20년 가까이 미국·유럽 등에서 바이오벤처들을 발굴하며 투자를 진행해오고 있는 권명옥 PMG인베스트먼트솔루션 헬스케어 투자책임(생화학 박사)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현 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특히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잇따른 임상 3상 실패는 일시적인 악재일 순 있지만, 과거 미국·유럽이 겪었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며 산업 성장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16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한국바이오협회에서 만난 권 책임은 “얀센·사노피 등 글로벌제약사와 첫 기술수출의 포문을 연 한미약품부터 최근 국내 바이오텍(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 자체적으로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이전한 사례 등은 엄청난 성장의 결과”라며 “앞으로도 수많은 도전과 실패 속에 더 큰 결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만, 국내 제약바이오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며 더 빠르고 견고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박사는 무엇보다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으로 깊이 있는 기초연구 결과물을 꼽았다. 현재 미국의 MIT·하버드, 스위스 연방대 등에선 전문적인 인큐베이션 시스템을 통해 연구실에서 나온 수많은 기초연구들이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되고 있다.
권 박사는 “투자→연구→기술이전의 선순환 구조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탄탄한 연구 결과물들이 신약개발에 한 발짝 다가서는 지름길”이라며 “한국도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이 같은 구조가 빠르게 뿌리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전략적 투자 = 특히 그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선순환 구조가 시장에 안착되기까지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보다 뒤처졌던 싱가포르가 10년 사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통한 글로벌 제약사와 해외 전문 인력 유치 등이 주효했다”며 “한국 정부도 글로벌적인 관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의 세제 혜택 등으로 세계 10대 글로벌 제약사 중 8곳이 싱가포르에 입주해 있으며, 전 세계 의약품 공급량의 40%가 싱가포르에서 생산되고 있다. 또한 연구비부터 자녀 교육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으로 젊은 과학자들 영입에도 공을 들이며 탄탄하게 산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권 박사는 국내 제약바이오 성장을 위한 효율적인 지원 구조 마련도 강조했다. 그는 “지원 규모도 중요하지만 실패를 하더라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단계별 성장에 따른 지원과 세계 흐름에 맞는 기업 선정 및 평가가 이뤄져야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장기적인 안목과 경험이 많은 벤처캐피털(VC)들의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권 박사는 “미국·유럽에는 수많은 신약개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한 전문 VC 인력 풀이 상당하다”며 “바이오벤처에 피드백을 줄 정도로 많은 노하우와 산업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VC들이 투자 회사의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국내와 차별화된 점”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바이오의 성장은 최근 VC의 활발한 바이오 투자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2000년만 해도 국내 벤처투자의 2%에 불과했으나 2013년 처음으로 10%를 돌파한 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VC의 바이오헬스 분야 투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바이오 벤처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는 국내 시장이 조금 더 성숙되기 위해선 통찰력 있는 바이오 전문 VC가 주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 권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아직 신약 개발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에서 해외처럼 전문 VC가 탄생하려면 활발한 해외 투자를 통해 해외 전문 VC들의 노하우를 배우거나 전문 VC들을 국내로 영입해 새로운 투자 문화를 장착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