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게임으로 보는 세상] 게임 개발자의 ‘블루칼라’식 통제라는 우화

입력 2019-10-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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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
화이트칼라의 생산성 측정은 화이트칼라라는 계급이 탄생한 순간부터 골치 아픈 문제였다. 반면 블루칼라의 노동생산성 측정은 예측 가능하고 통제도 가능하다. 미국 베들레헴 철강회사에서 석탄을 퍼 올리는 삽질을 연구해 삽의 모양과 노동자의 동작을 표준화한 테일러리즘이나 모델T 자동차 조립공장에 콘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포디즘은 대표적인 사례다.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볼 수 있듯이 포디즘 초기에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콘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추어 단순반복적인 노동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노동 속에 모던타임즈의 주인공은 길 가던 여자의 원피스 단추를 볼트로 착각해 공구로 조이는 정신이상 행동까지 한다. 공산주의의 원조 칼 마르크스가 지적한 ‘노동의 소외’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블루칼라의 노동생산성 향상은 인류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20세기의 위대한 업적은 제조업 육체노동의 생산성을 50배 올린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블루칼라와 달리 화이트칼라의 생산성 측정은 극히 어렵다. 특히 화이트칼라의 작업이 창작적 성격이 강할 경우 측정은 더더욱 어렵다. 개인의 능력과 작업 형태의 차이, 팀 작업의 유무, 보상 등등의 많은 변수들이 개입되면 측정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천재 프로그래머와 범재는 2만 배의 능력 차이가 난다”고.

예를 들어 개발자가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해서 그가 항상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제대로 된 개발자라면 카페에 앉아 동료들과 잡담을 하고 있을 때도 머릿속에는 프로그램 버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 이 개발자의 머릿속을 열어 보지 않는 이상 그 개발자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화이트칼라의 성격을 가진 개발자를 블루칼라처럼 통제하려는 시도가 한국 게임업계에 등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넥슨은 15분을 기준으로 업무시간과 비업무시간을 구분해 직원들이 15분 이상 자리를 비울 때는 PC에 ‘자리 비움’ 버튼을 눌러야 한다. 넷마블도 15분을 기준으로 15분 이상 PC가 비가동 상태일 경우 비업무 상태로 인식한다. 엔씨소프트는 회사 내부를 업무 공간과 비업무 공간으로 구분해 5분 단위로 업무시간을 확인한다. 회사 1층에 설치된 출입문인 ‘스피드 게이트’를 통해 업무 공간과 비업무 공간이 구분되어 출입문을 통과하면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1층 출입문을 벗어나 카페나 흡연공간에 있을 경우 비업무 공간으로 분류돼 5분 이상 머물 경우 근로시간에서 제외된다.

화이트칼라를 블루칼라 방식으로 통제해 생산성 향상과 혁신이 가능했다면 우리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미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테일러리즘, 포디즘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짐은 없다. 고작해야 ERP(전사적 자원관리)나 RPA(로봇프로세스 자동화) 같은 소프트웨어를 투입해 제어하거나, 스톡옵션 부여, 비전에 대한 공유 등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매년 직원을 상대평가해 저성과자 10%를 해고한 잭 웰치 전 회장의 GE는 2016년 이 평가제도를 폐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MS도 2013년 말 10여 년간 유지한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관리자와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커넥트 미팅’을 만들었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런 게임산업에 중국 정부의 한국 게임 규제, 일부 의사집단에 의한 게임의 질병코드 부여 시도 등 온갖 악재가 터지고 있다. 한국 게임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단절과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그 혁신은 직원이 아닌 경영자와 창업자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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