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달지 마!” 학교나 회사, 혹은 집에서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했거나 들어봤음직한 말이다. 글로만 읽어도 위압적 말투가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다. ‘토를 달다’는 필요 없는 말들을 한다는 뜻이다. 주로 변명을 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말대꾸를 할 때 쓰는 표현이다. 누군가의 의견이나 제안 등에 끼어들어 “왜 그래야 하느냐?”, “하기 싫다” 등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초를 칠 경우에도 쓸 수 있다. 물론 정당한 이유나 비판을 내놓았을 땐 “토 단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토’는 서로의 상황에 기본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말이다.
‘토’의 본모습은 우리말의 ‘조사’이다. ‘토씨’라고도 일컫는다. 북한에서는 조사, 어미, 접사 모두를 ‘토’라고 부른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토는 ‘정확함’을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토’는 한자로만 이뤄진 문장을 읽을 때 빛을 발한다. 훈민정음 언해본 첫 문장 “國之語音(국지어음)이 異乎中國(이호중국)하야 與文字(여문자)로 不相流通(불상유통)할새”를 보자. 한자로 된 원문에는 없는데 구절마다 붙은 ‘이, 하야, 로, 할새’가 바로 ‘토’이다. 어르신들이 한문 읽는 방식을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至誠感天’의 경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이면, 이라’가 ‘토’에 해당한다. 토를 붙이니 읽기가 훨씬 편하고 뜻을 이해하는 데도 수월하다.
간혹 한자에 우리말로 읽히는 대로 음을 달아 놓은 것을 ‘토 단다’로 아는 이들이 있다. 이는 ‘독음’, 즉 한자의 음을 단 것이지 ‘토’와는 전혀 관계없으므로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토’는 어쩌다 ‘필요 없는 말’이라는 부정적인 뜻을 갖게 됐을까? 조사가 때론 문장을 어색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일 게다. 특히 누군가와 말할 때 조사를 일일이 붙이면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점심 먹었니? 밥 먹으러 가자”라고 하지, “점심을 먹었니? 밥을 먹으러 가자”라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조사가 없어도 뜻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굳이 필요 없는 조사는 ‘쓸데없는 말’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명·핑곗거리·말대꾸, 심지어 다른 사람의 계획에 초를 치는 말로까지 뜻이 확장됐다.
“나이 들수록 지갑과 귀는 열고 입은 닫아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명언이다. 지갑을 열어 베풀고, 입을 닫고 귀를 열면 어디를 가든 대접받을 수 있다. 특히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함께 호흡할 때 비로소 세대 간 연대가 강화된다. 지갑 열 형편이 아니라면 입이라도 닫아야 중간은 간다. 젊은이의 의견을 무시해 “토 달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꼰대로 산다는 것, 참으로 딱한 일이다. jsj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