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카이에게 올해는 뜻깊은 해다. 자신도, 팬들도 ‘카이의 인생작’이라고 꼽는 뮤지컬 ‘벤허’를 비롯해 ‘엑스칼리버’, ‘팬텀’ 등의 주인공을 맡아 무대 위를 누볐다. 24일 LG서울아트센터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는 카이에겐 중요한 이벤트다.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서머셋팰리스에서 만난 카이는 “2년 넘게 한국관광공사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공연을 많이 했다”면서 “외국인과 교민, 관광객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만들어진 게 2014년 ‘카이 인 이탈리아’(Kai in Italy)다”며 이번엔 2집 ‘카이 인 코리아’(Kai In Korea)도 열심히 준비했다”고 했다.
카이는 스스로 ‘뮤지컬의 팬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은 미국의 브로드웨이나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까지 느낀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서 범대중적인 예술영역으로 가기엔 한계가 있지만, 대한민국의 문화적 수준은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어요. 우리나라 한 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수만 수백 편이에요. 1990년에는 한국영화의 위상이 지금처럼 될 거로 생각하지 못했잖아요. 이제는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는 경지까지 올라왔죠. 뮤지컬의 미래도 평탄치는 않겠지만,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갈 거예요. 이미 그 수준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데뷔한 지도 어언 10년이다. 서울대 성악과를 나와 ‘팝페라’ 가수로 관객을 만났다. 팝페라에서 시작한 임태경이 있고, 류정한, 김소현이 성악을 전공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시기였지만, 지금처럼 저변이 확대되진 않았던 때다. 그래서일까. 팝페라에서 뮤지컬로 넘어오는 과정을 생각하면, 사람의 시선과 의견을 너무 많이 신경쓴 기억이 가득하다고 했다.
“음악적 자존감이 많이 없었던 거 같아요. 제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또 수렴했죠. 어느 순간부터 느꼈어요. 자신감과 경험치와는 별개로 자존감이 생긴 거예요. 제가 좀 부족할 수 있어도 나만의 것을 만들자는 생각에 집중했어요. 누구보다 나아지겠다는 생각보다, 수많은 노력을 통해 노래와 감정, 동선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레베카’의 막심 드 윈터 역에 처음 참여하게 되면서 ‘나만의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카이의 고집은 선명해졌다.
“아 참, 대본엔 막심 드 윈터의 나이가 나오지 않아요. 제가 맡은 것에 대해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있어요. 어떤 기준과 선입견을 품고 보면, 저는 안 어울리는 ‘막심’이 되는 거예요. 나이보다 중요한 건 조화로움이겠죠. 제가 만약 연기력이나 음악성이 떨어진다면 칼날 같은 판단을 내려주세요.”
카이는 ‘벤허’ 유다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식음을 전폐했다. 대충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 탓이다. 스스로도 ‘고지식’하다고 인정(?)했다.
“새로운 도전과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벤허를 맡으면서 때가 왔다, 모든 걸 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예루살렘 노예 그대로가 되고 싶었어요. 하루에 운동을 2시간씩 밤낮으로 했고, 탄수화물 섭취를 전혀 하지 않았죠. 무식하게 했어요. 트레이너가 ‘그 정도면 됐다’고 했지만 저는 말했죠. ‘어떻게 알아요?’라고요.”
카이는 ‘카이랑 정기열이 같을 필요는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부족하다면 부족한 대로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고된 여정이었습니다. 10년 20년,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