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윤석열과 이회창

입력 2019-10-2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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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진 사회경제부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의 한판승부에서 이겼다. 건곤일척의 큰 싸움에서 승자로 기록된 윤 총장이 얻게 될 이익은 뭘까.

지난 9월 초, 문재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을 법무부 수장으로 지명할 때만 해도 관전평은 팽팽했다. 결국 패자는 옷을 벗고, 승자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호사가들의 말은 꼬리를 물었고, 스포츠 경기 승부를 예측하듯 흥미진진한 얘기들이 입과 입을 통해 전해졌다.

초반에는 윤 총장의 패배를 점치는 인사가 많았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조 전 장관은 살아있는 권력으로 통했다. 검찰 개혁의 거센 파도를 정면에서 받아내던 윤 총장이 산 권력에 대한 수사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조 전 장관의 주변부터 차근차근 짚고 올라갔다. 검찰 수사의 전형적인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입시 비리와 관련해 부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와 자녀를 겨냥했고, 사모펀드 차명투자 의혹은 핵심 인물인 5촌 조카를 조사해 구속기소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윤 총장과 조 전 장관의 대결 구도는 관망세였다. 그러나 지난 3일 검찰이 정 교수를 소환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9일 법원이 웅동학원 채용비리 혐의를 받는 조 전 장관의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반전이 예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닷새 후 조 전 장관이 물러나며 전세가 크게 기울었다. 조 전 장관이 취임한 지 35일 만에 사실상 결판이 난 셈이다. 무엇보다 ‘입시비리‧사모펀드’ 혐의를 받는 정 교수의 구속은 치명타였다. 이제 검찰 수사는 정점인 조 전 장관을 향하고 있다.

이번 대결에서 윤 총장의 가장 큰 수확은 대중에게 다시 한번 각인된 ‘강골 검사’의 이미지다.

윤 총장이 걸어온 길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쪽 같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범죄 혐의가 짙은 실세들은 여지없어 구속수사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방해하는 지속적인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남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록으로 회자된다. 점심시간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여야 의원들에게 “인사라도 좀 하시라”는 후배 검사에게 “내가 의원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핀잔을 준 일화도 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로 국론이 분열된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국민 대다수가 윤 총장을 지지했다. 윤 총장이 국감장 발언 이후 좌천성 인사를 겪을 때마다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윤 총장의 행보는 26년 전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총재를 떠올리게 한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법조인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 전 총재는 1960년 판사로 임용된 후 1989년 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장 겸직)을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이 전 총재는 판사 시절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각종 계엄법 위반 사건에 대해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리며 부침을 겪었다. 당시 정권의 기피인물로 낙인이 찍혔으나 이 때부터 대중은 그를 ‘대쪽 판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전 총재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인식된 것은 1993년 김영삼 정부의 감사원장으로 임명됐을 때다.

이 전 총재는 감사원장이 되자마자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뽑았다. ‘성역 없는 감사’를 선언하며 청와대 비서실, 국방부, 안기부(현 국정원) 등을 감사 대상으로 삼았다. 평화의 땜 사업 관련해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추진했고, 당시 정권의 압박을 견뎌냈다.

1994년 국무총리 시절엔 ‘강한 총리상’을 확립하려 했으나 외압에 부딪혀 실패하자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며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이 전 총재의 이러한 행동들은 ‘대쪽’이라는 별명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고, 국민적 인기를 끌어 2002년 대권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된다.

윤 총장 얘기로 다시 돌아오자. 조 전 장관 관련 수사가 끝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이 기다린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망에 오른 국회의원은 모두 110명이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60명으로 가장 많고 더불어민주당 39명, 바른미래당 7명, 정의당 3명, 무소속이 1명이다.

윤 총장의 성향을 볼 때 패스트트랙 사건도 원칙대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 상황에 따라선 정치권이 쑥대밭이 될 수 있다.

공적 인물에게 새겨진 대중적인 이미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날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세와 여론은 시시각각 변한다. 윤 총장의 ‘강골 검사’ 이미지가 어떤 항로를 설정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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