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이 급속히 이뤄진 시기는 1980년대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 사용 편중은 국가경제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 당시 우리 경제는 소요 에너지의 60% 이상을 석유에 의존했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천연가스를 도입하여 가정에서 쓰던 무연탄을 대체하였고,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을 통해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공급하였다.
이제 우리는 범지구적 과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미세먼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에너지 구조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과거 성공했던 에너지 전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에너지는 다른 산업에 비해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필요로 한다. 도시가스를 보급하기 위해 1980년대 초부터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할 인수기지와 전국적인 배관망을 건설하였다. 원자력발전소와 대형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발전소 부지를 확보하고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 인근의 소비지까지 수송하기 위한 송전망 건설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국제 원유가격이 안정된 시기에 수입석유에 부과한 석유사업기금(현재는 에너지자원특별회계)에 많이 의존하였다. 더구나, 1980년대 말 시작한 국내 무연탄광의 구조조정도 이 기금을 활용하여 큰 마찰 없이 단기간에 마무리하였다. 석유사업기금이란 공적자금이 없었다면 대규모의 투자도 원활한 구조조정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정부 주도로 에너지 공급구조의 전환을 시도하는 동시에 민간의 능력을 활용한 기술자립을 통해 연관산업의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조성하였다. 해외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선박은 국내 조선소를 활용하여 건조함으로써 우리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초대형 설비 건설 과정에 참여하였던 민간 건설회사와 플랜트 업체의 시공과 품질관리 역량이 여러 단계 올라가 오늘날 플랜트 수출 강국이 되었다.
셋째, 산업이 성숙하면서 정부 규제를 줄이고 시장 기능을 확대하였다. 1990년대 국제 자원시장의 안정세를 활용하여 석유가격 자유화 등 산업에 대한 정부 통제를 점차 줄였다. 원자력발전소 보일러와 터빈을 생산하는 한국중공업을 민영화하여 기기제조 분야의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하였다. 정부 독점인 전력과 가스시장도 민간의 참여와 구조개편을 통해 경쟁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향후 에너지 전환 추진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우선 재생에너지가 활발히 보급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력수송 시스템이 새로워져야 한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받아 소비자에게 공급하던 것을 쌍방향으로 바꿔야 하며,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별로 송변전망 계획도 바꿔야 한다. 전기차나 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 충전소에 대한 투자도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 소요는 매우 크며 초기에 경제성을 갖기 힘든 만큼 공공부문에서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시장 기능도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우리와 마찬가지로 국내 부존자원이 빈약하여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시해 왔던 일본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시장과 경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력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고 전기요금에 대한 규제를 푼 결과,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산업이 많이 출현하고 있다. 매년 2월 말 도쿄에서 열리는 ‘월드스마트위크전시회’는 전 세계 1600여 개의 에너지 기업이 참가하여 4차 산업혁명 진행 과정에서 에너지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진열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작지만 민간의 역동성과 민첩성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왔다. 지금 우리 수출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반도체도 1980년대 초 시작 단계에는 정부 내에 회의론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분야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투자 결정을 한 것이 지금의 반도체 강국을 만들었다.
에너지 미래를 이끌어갈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정부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정부가 인프라 분야에 선투자(先投資)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정책을 위한 각종 계획들도 정부 주도의 공급 설비 확장과 보급 중심에서 벗어나 민간의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