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경제] ‘애니 덕후’ 김건우 씨 “덕후요? 새로운 시장 키우는 사람이죠”

입력 2019-11-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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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포마드에 훈훈한 대학생인 김건우(24) 씨. 애니메이션 상품을 팔고, 실내가 꾸며진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홍인석 기자 mystic@)
▲반듯한 포마드에 훈훈한 대학생인 김건우(24) 씨. 애니메이션 상품을 팔고, 실내가 꾸며진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홍인석 기자 mystic@)

우연히 겪은 일이 삶의 궤적을 바꿔놓기도 한다. 재미 삼아 던진 공이 한 소년을 야구선수로 이끌기도, 호기심에 나간 게임대회를 시작으로 프로게이머의 길을 걷기도 한다. 우연히 간 카페에서 자신의 인연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애니 덕후’ 김건우(24) 씨가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여행으로 떠난 도쿄. 우연히 간 ‘아키하바라’에서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연기가 하고 싶어 한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합격했지만, 그날 부로 다른 길을 걷게되었다는 김 씨.

그는 “옛날에 전자산업이 성행한 ‘아키하바라’가 지금은 덕후들의 성지에요. 여기가 주는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몇 년 동안 연극영화과에 가려고 준비했고, 합격까지 했는데 등록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일본 문화를 공부하는 게 ‘내 길’이라고 확신했거든요. 그 뒤에 반수해서 일어일문학과에 들어갔어요.”

▲김 씨가 모은 만화책과 피겨. 아주 일부라고 할 정도로 많이 모았다고 한다.  (사진제공=김건우)
▲김 씨가 모은 만화책과 피겨. 아주 일부라고 할 정도로 많이 모았다고 한다. (사진제공=김건우)

갑작스레 바꾼 진로지만, 부모님은 그를 믿었다고 한다. 평소 할 것은 다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그를 응원했다. 되레 친구들이 연기를 포기한 게 아깝지 않으냐고 물었다고 한다.

“저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일본에 갔을 때, 이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 때 자기가 좋아한 걸 찾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일생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취미이자 일을 찾은 것 같아요.”

▲김 씨가 모은 피겨들이 방 한편에 쌓여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사진제공=김건우)
▲김 씨가 모은 피겨들이 방 한편에 쌓여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사진제공=김건우)

일본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김 씨가 애니메이션 덕후로 입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만화책과 피겨를 수집했다.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책과 피겨를 샀다. 관심을 가진 애니메이션 종류만 30종이 넘는다.

“지금까지 2000만 원 정도 쓴 것 같아요. 피겨가 100개쯤 되고, 만화책도 400권 정도 돼요. 피겨는 싼 것이 2만~3만 원 수준이고, 비싼 것은 10만 원도 넘어요. 주문 제작하면 100만 원 정도? ‘덕질’을 위해 (일본어 과외 등) 일을 쉰 적이 없어요.” (웃음)

▲'코믹월드'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축제다.  (뉴시스)
▲'코믹월드'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축제다. (뉴시스)

애니메이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김 씨가 별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그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애니 덕후'들이 모이는 ‘코믹월드’ 행사는 열릴 때마다 1000명 이상이 모인다. 한 두달에 한 번 꼴로 열리는 이 행사의 참가비는 5000~6000원 선. 코스프레 한 사람을 구경하고, 관련 상품도 구매한다. 벌써 10년이나 열렸다.

“코믹월드 열기 외에도 피겨를 파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관련 산업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2014년만 해도 애니메이션 피겨 가게를 한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주로 남부터미널역에 있는 국제전자센터에서만 거래를 했죠. 지금은 포털에 등록된 곳만 36군데에요. 몇 년 사이에 매장도 많이 생기고, 종류도 많아졌죠."

▲애니메이션 덕후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게임.  (출처=프린세스 커넥트 캡처 )
▲애니메이션 덕후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게임. (출처=프린세스 커넥트 캡처 )

‘애니 덕질’의 양상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피겨나 코스프레로 덕질을 했지만,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 비중이 높아졌단다. 원작은 모바일 게임인데, 줄거리가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어 게임에서 애니메이션을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덕후들 사이에서는 ‘프린세스 커넥트’가 유명해요. 게임에 돈 쓰는 것을 ‘현질’한다고 하잖아요. 여기서도 돈을 많이 써요. 저도 400만 원 정도 현질을 했어요. 요즘에는 애니 덕후들이 덕질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진 것 같아요. 모바일 게임에 수백만 원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더라고요.”

프린세스 커넥트는 덕후들의 관심에 힘입어 소위 '히트친 게임'의 반열에 등극했다. 누적 다운로드 건수 330만 건, 애플 앱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 2위, 구글 플레이 3위에 올랐다. 이 게임을 배급한 카카오게임즈 관계자는 "3~4주에 한 번씩 이뤄지는 업데이트 때마다 매출 순위 10위권에 들어간다"라고 귀띔했다.

▲피겨를 '자식처럼' 관리한다고 한다. 부러지기라도 하면 정말 속상하다고. (사진제공=김건우)
▲피겨를 '자식처럼' 관리한다고 한다. 부러지기라도 하면 정말 속상하다고. (사진제공=김건우)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돈을 쓰는 애니 덕후들. 관련 산업의 규모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욕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단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덕후'라는 이유로 욕을 먹었다는 김 씨다.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판적인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한 사람의 힘으로는 힘들어요. 많은 사람이 함께 노력하고 유쾌하게 반응하면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덕후들은 누구보다 좋아하는 게 뚜렷한 사람들이니까요." 그가 인터뷰에 기꺼이 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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