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진의 시정 24시] 꿈과 사랑이 가득한 ‘금수저’만의 집?

입력 2019-11-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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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 것입니까, 사는 곳입니까. 집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내일을 꿈꿔야 하는 곳입니다.” 신혼부부 주거지원 대책을 발표할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다.

지난달 28일 박 시장은 내년부터 2022년까지 연간 2만5000쌍의 신혼부부 주거복지를 지원하는 내용의 ‘서울시 신혼부부 주거지원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지원 대상 확대를 위해 소득 기준을 종전 부부합산 8000만 원 이하(도시근로자 평균소득 120% 이하)에서 1억 원 이하(150% 이하)로 대폭 완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온라인 댓글 상에서 누구를 위한 주거지원이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팽배하다. “부부 중 한쪽 연봉이 6000만 원, 다른 한쪽이 3500만 원이더라도, 혜택을 다 받게 된다. 연봉 1억 원이면 세후 월 6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서민의 기준을 잘 모르는 듯하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박 시장의 말대로라면 얼마나 좋은 지원인가. 가족이 사랑하고 꿈꾸며 살 수 있게 서울시가 나선다는데.

이번 논란은 서울시가 신혼부부 지원 대상을 대폭 늘렸지만 임차보증금 지원 정책에서 신혼부부의 ‘자산 규모’를 따지는 기준이 없어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받지 못할 수 있고 심지어 중산층 부모를 둔 금액 소득자 ‘금수저’ 청년세대가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나오면서다.

서울시가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지원을 늘리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정책적 완결성이 부족해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느슨한 기준은 대출을 부추겨 전세가 상승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득이 충분한 신혼부부 세대가 서울시가 지원하는 저리 전월세 대출을 지렛대 삼아 강남이나 목동과 같은 고액 전세주택을 신청할 수 있어서다. 전세 자금 마련이 쉬워지면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지난 10여 년 전 전셋값 상승시대에 경험한 사례다. 더욱이 정부가 사회 초년생에게 연간 최저 1.2% 금리로 빌려주는 전세자금 대출도 갭 투자에 활용돼 전세가 상승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소득은 낮지만 자산이 많은 일명 ‘금수저’까지 이 제도에 편승할 경우 이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애초 제도 취지가 목돈이 없어 전월세 비용 마련과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신혼부부의 주거안정을 돕겠다는 것인데 금수저 대출은 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제도상 ‘맹점’이다.

시장은 늘 정책의 선한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토부가 자산 기준을 둔 것도 제도를 악용하는 '금수저 대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주거 정책은 ‘단기간 성과주의’가 아닌 지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시장 임기동안 운영되고 시장이 물러나면 곧바로 폐기되는 정책은 정책이 아닌 표퓰리즘일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울 시민들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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