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경제] '해외여행 덕후' 이민정 씨 "대기업 퇴사 후 승무원 전직, 일상이 곧 여행이죠“

입력 2019-11-11 16:53 수정 2019-11-1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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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한 국적사에서 근무하는 '해외여행 덕후' 이민정 씨. 규정상 회사와 이름을 함께 밝힐 수 없다고 한다. (홍인석 기자 mystic@)
▲중동의 한 국적사에서 근무하는 '해외여행 덕후' 이민정 씨. 규정상 회사와 이름을 함께 밝힐 수 없다고 한다. (홍인석 기자 mystic@)

새로운 곳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여행은 ‘나’를 조금 더 알게 해주는 일이다. 작가 김영하는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라고 썼다. 여행의 마력이다.

덕분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고 있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이후 121만 명에 불과했던 출국자 수는 30년이 지난 지금 30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2015년에는 해외여행으로 한국인이 쓴 돈은 212억7000만 달러(약 24조7900억 원)로 처음으로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기자가 만난 ‘해외여행 덕후’ 이민정(25) 씨도 해외여행을 위해 수십 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5년 동안 30개국, 100여 개가 넘는 도시를 돌아다녔다. 지금은 외국 항공사(외항사) 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해외여행 덕질’을 시작했다.

▲승무원이 되기 전부터 해외여행을 곧잘 다녔다는 그.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사진제공=이민정)
▲승무원이 되기 전부터 해외여행을 곧잘 다녔다는 그.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사진제공=이민정)

◇어릴 때부터 시작된 해외여행…혼자 여행 떠나면서 재미 느껴

이 씨가 해외를 나가는 데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고모가 미국, 이모가 캐나다에 살고 있어 자연스레 해외를 떠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모친도 일본에 살아서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여행의 재미’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20세 때다.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는데 그때 자유시간이 많았어요. 그만큼 여유롭다보니 저렴한 비행기 표를 골라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죠. 그때 처음 여행의 재미를 느꼈어요. 처음에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분위기, 음식과 문화가 신기했어요.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를 찾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죠. 그런데 나중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이 씨는 성균관대 졸업 이후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해 6개월 근무했다고 한다.  (사진제공=이민정)
▲이 씨는 성균관대 졸업 이후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해 6개월 근무했다고 한다. (사진제공=이민정)

◇대기업과 맞바꾼 승무원의 삶…“몸은 고되지만 행복해”

대학생 시절, 그는 삶의 계획을 세웠다. 돈을 벌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 살겠다고. 계획은 들어맞는 것 같았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국내 한 대기업에 취업한 이 씨. 브랜딩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입사한 회사였지만 조직이 개편되면서 업무가 바뀌었다고 한다. 업무량이 적었지만 그때를 가장 힘든 시절로 회상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지키는 게 힘들었어요. 업무가 내 성격과 안 맞고, 재미가 없어서 더 그럴지도 몰라요. 인생의 목적이 없어지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여간해선 감기도 안 걸리는 제가 6개월 동안 독감을 2번이나 걸렸다니까요. 주말에 울기도 했어요. 주위에서 1년은 버티라고 했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겨 이직을 결심했죠."

▲중동의 한 국적사에 입사해 교육 받을 때의 모습. 한국인 승무원이 정말 많다고 했다.  (사진제공=이민정)
▲중동의 한 국적사에 입사해 교육 받을 때의 모습. 한국인 승무원이 정말 많다고 했다. (사진제공=이민정)

그때 대학교 동기가 눈에 띄었다. 외항사를 다니며 다른 나라를 많이 다니는 동기를 보고 ‘이거다’라고 생각했다는 이 씨. 똑같은 월급쟁이에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고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외항사 취업에 전념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승무원이 되고 나서 좋은 게 일상이 곧 여행이란 점이죠. 그게 참 좋아요. 건강도 좋아졌고, 가족과도 더 친밀해졌어요.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은 덕분인지 살이 5kg나 쪘죠. 무뚝뚝한 아빠도 자상해졌어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떨어져 살다 보니까 사랑한다는 표현도 많이 하고 요즘은 출근 전에 안아주고 나가요. 일하면서 여러모로 행복해요.”(웃음)

▲노르웨이 베르겐 여행 당시 탔던 배의 조종석. 계기판과 레이더가 눈에 띈다. 어그러진 계획이 그에게 진귀한 경험을 선사했다.  (사진제공=이민정)
▲노르웨이 베르겐 여행 당시 탔던 배의 조종석. 계기판과 레이더가 눈에 띈다. 어그러진 계획이 그에게 진귀한 경험을 선사했다. (사진제공=이민정)

◇“나는 게으른 여행자”…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노르웨이, 추천하고 싶은 곳은 ‘모로코’

이 씨는 자신을 ‘게으른 여행자’라고 표현했다.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지 않고 자신이 머무는 곳 주변 분위기를 즐기는 유형이기 때문. 한 나라를 여러 번 가도 매번 새롭게 느끼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노르웨이 ‘베르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선박여행을 신청했는데 그 배를 놓쳤어요. 당연히 환급도 안 되죠. 그냥 멍하니 서 있었는데 이 얘기를 들은 다른 배 선장님이 여기에 타라고 하더라고요. 조종석 바로 옆으로 자리를 내줬는데 계기판이랑 레이더 같은 것들도 다 보여서 정말 신기했죠. 그 배 안에서 새해를 맞이했어요. 사람과 관련한 이야기라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승무원으로 일한 지 1년 정도 된 지금, 그는 15개국을 돌아다녔다. 이 씨는 그중에서 모로코에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아프리카에 있으면서도 아랍어와 불어를 같이 쓰는 나라. 유럽과 아랍, 아프리카가 섞여 있는 곳이라고 했다.

“모로코는 정말 이국적이에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나라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유럽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나라죠. 또 아프리카 여행은 비싸고 위험한데 이곳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괜찮아서 무리를 지어 가면 즐거운 여행이 될 거예요.”

▲여행 갔던 곳을 또 찾아 사진을 찍는 것은 그의 취미다. 오른쪽이 2년 만에 다시 찾은 그리스.  (사진제공=이민정)
▲여행 갔던 곳을 또 찾아 사진을 찍는 것은 그의 취미다. 오른쪽이 2년 만에 다시 찾은 그리스. (사진제공=이민정)

◇외항사에서 일하려면 영어는 필수, 덕질의 최종 목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씨는 외항사에서 일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닌 실제 근무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면접은 영어를 못해도 할 수 있어요. 질문이 정해져 있고 답변을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할 때 영어를 못하면 곤란해요. 동료와 갈등이 생기거나 나를 변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어를 못하면 자신이 힘들어요. 문법이나 어순이 틀리더라도 내 생각을 분명히, 빠르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끝마칠 때쯤 덕질의 목표로 책 출간과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꼽았다.

"나중에 제 여행 이야기를 묶어서 책을 내고 싶어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있었던 일화처럼 말이죠. 결과물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목표도 있어요." 덕질의 목표가 곧 삶의 계획이기도 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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