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한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광범위한 증거인멸과 법정 모독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 판결 등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요청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자사는 정정당당하게 소송에 임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은 소송에서 여론전을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LG화학은 14일 SK이노베이션이 증거보존 의무를 무시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증거인멸 행위와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법정 모독’ 행위를 하고 있다며 ITC에 67페이지 분량의 요청서와 94개 증거목록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13일(현지시간) ITC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이번에 제출한 요청서에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패소 판결’을 조기에 내려주거나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생산·테스트·수주·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통상 조기 패소 판결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 단계까지 진행될 것 없이 피고에게 패소 판결이 내려진다. 이후 ITC 위원회에서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내리면 원고 청구에 기초하여 관련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LG화학은 이러한 요청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이 전사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지속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LG화학은 소송을 제기한 이튿날인 4월 30일 SK이노베이션이 ‘FW: [긴급] LG화학 소송 건 관련’이라는 제목으로 사내 메일을 보냈다고 공개했다.
이 메일에는 “각자 PC, 보관 메일함, 팀룸에 경쟁사 관련 자료는 모두 삭제 바란다”며 “특히 SKBA(SK이노베이션 전지사업 미국법인)는 더욱 세심히 봐 달라. PC 검열 및 압류가 들어올 수도 있으니 본 메일도 조치 후 삭제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LG화학은 소송 제기 전에도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없애려는 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LG화학이 ITC 영업비밀침해 제소에 앞서 4월 8일 SK이노베이션 측에 내용증명 공문을 보냈는데, 공문 발송 당일 SK이노베이션이 7개 계열사 프로젝트 리더들에게 자료 삭제와 관련된 메모를 보낸 정황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같은 달 12일 사내 75개 관련 조직에 삭제지시서와 함께 LG화학 관련 파일과 메일을 목록화한 엑셀시트 75개를 첨부하며 해당 문서를 삭제하라는 메일을 발송했다는 것이 LG화학의 주장이다.
ITC는 소송 당사자가 증거 자료 제출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거나 고의로 누락시키는 행위가 있을 시 강한 조처를 할 수 있으며, 실제 재판 과정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한, LG화학은 이와 관련해 ITC에 포렌식을 요청했으며 ITC 역시 포렌식을 이례적으로 명령했지만, SK이노베이션이 ITC의 명령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이 ITC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980개 문서가 정리된 ‘SK00066125’ 한 개의 엑셀 시트만 조사했으며, 나머지 74개 엑셀 시트에 대해서는 ITC는 물론 LG화학도 모르게 9월 말부터 별도의 포렌식 전문가를 고용해 은밀하게 자체 포렌식을 진행 중이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탈취한 영업비밀을 조직적으로 관련 부서에 전파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의 LG화학 경력사원 면접평가 자료에 따르면 “타사의 믹싱 기술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극 공정 노하우를 단시간에 흡수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내에 공유한 이메일에는 “LG화학 연구소 경력사원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고 요약한 정보에 따른 것”이라며 LG화학의 전극 개발 및 생산 관련 상세 영업비밀 자료가 첨부돼 있었다고 꼬집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같은 LG화학 주장에 대해 “여론전에 의지해 소송을 유리하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경쟁사와 달리 소송에 정정당당하고 충실하게 대응 중”이라는 견해만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