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고등법원은 이날 106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서 “복면금지법은 합리적 필요 이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 비례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25명의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복면금지법 위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홍콩 정부는 지난달 5일부로 시위에서 마스크나 가면 착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복면금지법’을 시행했다. 아울러 홍콩 경찰에게 시민들을 상대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벗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최대 6개월의 징역형이나 2만5000홍콩달러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뒤 지난 7일까지 해당 법규 위반으로 체포된 사람은 총 367명에 이른다.
야당 의원들은 이를 두고 복면금지법의 근거가 된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가 홍콩의 실질적 헌법인 기본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긴급법이 의회인 입법회의 승인 없이 홍콩 행정장관에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평화집회에서까지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1922년 제정된 긴급법은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행정장관이 비상상황에서 의회인 입법회의 승인 없이 법령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규다. 이 법이 발동된 것은 지난 1967년 극심한 폭력 사태로 50명 이상이 사망했던 반(反) 영국 폭동 때 딱 한 번이었다. 그 이후로 쭉 잠자고 있던 이 법은 복면금지법 시행을 위해 지난 달 약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발동됐다.
이번 위헌 결정에 따라 캐리 람 홍콩 장관 입장이 앞으로 추가적인 긴급법 발동을 통해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앞서 일각에서는 캐리 람 행정장관이 추가적인 긴급법을 발동해 야간 통행 금지 혹은 소셜미디어 제한, 계엄령 시행 등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