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ㆍ소비재 시장은 소비 트렌드 변화가 활발해 최고경영자(CEO)가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업계 ‘장수 CEO’로 꼽히던 이석구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올해 초 회사를 떠났고, 최근 이갑수 이마트 대표이사와 이동호 현대백화점 부회장도 연말 인사 시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CEO들이 있다. 각자의 경영 방식으로 라면업계를 이끌고 있는 박준 농심 부회장과 이강훈 오뚜기 사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샐러리맨 신화’인 박준(71) 농심 부회장은 1981년 농심 수출과에 사원으로 입사한 후 39년째 회사에 몸담고 있다. 박 부회장은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과 함께 농심을 이끌고 있다.
박 부회장의 경영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그는 1984년 미국 지사장, 1991년 국제담당 임원을 거치며 농심의 글로벌 수출 선봉장을 맡아왔다. 2012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국제통’ 박 부회장의 지휘 아래 농심은 미국, 중국, 일본 등 거점 시장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으로 사업 영토를 착실히 넓혀 왔다.
올해도 박 부회장의 글로벌 드라이브는 계속되고 있다. 정체기에 직면한 국내 식품업계의 활로는 해외 진출뿐이라는 판단에서다. 농심은 9월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부지에 2억 달러(약 2400억 원)를 투입해 제 2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농심의 매출액(약 2조3000억 원)을 감안했을 때 1년 매출액의 10%에 달하는 거액을 미국에 투자한 셈이다.
농심은 신공장을 미국뿐 아니라 남미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삼아 2025년 미주 지역에서만 6억 달러(약 71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농심에 박 부회장이 있다면 ‘업계 라이벌’ 오뚜기에는 이강훈(66) 사장이 있다. 1977년 입사 후 영업, 마케팅 등 주요 부서를 거쳐 2008년 대표이사에 선임된 이 사장은 12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 사장은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 내수 시장에서 오뚜기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오뚜기는 라면 주요 소비층인 젊은 층 공략을 위해 2013년 LA다저스 소속의 류현진을 오뚜기 라면 전속모델로 발탁했다. 이는 수년간 10% 중반대에 머무르던 오뚜기의 라면 시장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영국 전통의 명문 축구단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2년 6개월간 파트너십 계약을 맺으며 글로벌 인지도를 높였다. 이외에 경쟁 업체들의 라면 가격 인상에도 주력 제품인 ‘진라면’ 가격을 2008년부터 동결하며 ‘착한 기업’, 이른바 ‘갓뚜기’ 이미지를 구축했다.
트렌드를 반영한 신제품 출시도 성장에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2015년 출시한 ‘진짬뽕’은 히트 상품 반열에 올랐고, 올해 9월 출시한 가성비 라면 ‘오!라면’은 출시 20일 만에 500만 개 판매를 돌파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오뚜기의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은 최근 26.2%까지 상승했다.
안정적인 실적은 입지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오뚜기는 이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2008년(1조2517억 원)부터 지난해(2조2468억 원)까지 매년 매출이 성장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오뚜기의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1000억 원 이상 증가한 2조3600억 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 길만 걸어온 오랜 경험과 지식으로 다년간의 성과를 내는 것이 장수 CEO로 살아남는 비결일 것”이라며 “오뚜기, 농심의 전임 사장도 20년 가까이 대표직을 역임한 것을 감안하면 회사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