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덕수궁 디팰리스’는 오랫동안 ‘유령건물’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93년 처음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지만 외환위기 등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2002년 분양을 재시도했지만 이듬해 파산하면서 공사가 또다시 멈춰섰다.
2016년 홍콩계 투자회사인 ‘퀸즈타운리미티드’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변화가 일었다. 퀸즈타운리미티드는 사업 시행사인 덕수궁PFV를 설립해 공사를 재개했다. ‘명품 주거단지’를 표방하고, 전보다 입주 규모를 줄이는 대신 설계를 고급화하고 프리미엄 커뮤니티시설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분양가가 3.3㎡당 5000만 원이 넘었지만 수요자가 줄섰다. 도심 노른자위 땅에 들어서는 고급 단지라는 장점 덕분이다.
◇'미운 오리'였던 유령 단지 '백조'로 탈바꿈
공사 중단으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단지들이 ‘백조’로 거듭나고 있다. 입지 등 과거 발견하지 못했던 장점들이 새로 빛을 보고 있어서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옛 대영연립 자리에 들어선 ‘테라팰리스 건대 2차’도 백조가 된 단지 중 하나다. 지난해 말 이 아파트는 3.3㎡당 평균 2600여만 원에 분양했다. 청약경쟁률이 최고 77대 1까지 올랐다. 걸어서 10여 분이면 지하철 2ㆍ7호선 건대입구역에 갈 수 있는 ‘더블 역세권’인 데다 인근에서 간만에 분양하는 신축 단지라는 점에서 청약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자양동 주민들은 2006년 조합을 설립하고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부터 8년 동안 재건축 공정이 중단됐다.
174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경기 과천시 우정병원 부지는 올해 7월 첫 삽을 떴지만 벌써 수요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1997년 공사가 멈춘 후 20년 넘게 ‘흉물’로 눈총을 받던 과거와는 상전벽해다. 과천지역 집값이 올해 들어 급등을 거듭하고 있는 데다, 과천 지식정보타운 조성과 GTX-C 노선 개통 등 호재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몸값이 너무 올라 지자체에서 견제구를 날릴 정도다. 위탁 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3.3㎡당 2800만 원에 분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과천시에선 이보다 200만~300만 원 낮춰 분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사 중단 단지들이 재조명받는 것은 유동성 위기 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사이 시장 상황이 변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개발 부지 줄어 단지 몸값 '쑥'… "슬럼화 방지" 정부도 적극 지원
덕수궁 디팰리스나 테라팰리스는 부동산시장의 대세가 직주 근접성으로 옮겨가면서 빛을 본 사례다. 우정병원 부지 역시 20년 전과 달리 주변 부동산시장이 뜨거워지면서 덩달아 관심을 받고 있다.
부동산 수요가 몰리고 있는 수도권의 개발 가능한 땅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도 공사 중단 단지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김은진 부동산 114 리서치팀장은 “공사 재개 시점의 주택 경기 상황에 따라 공사 중단 단지의 가치는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정부도 공사 중단 건물의 공사 재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공사 중단 건물이 흉물로 남아 지역이 슬럼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는 2일 발표한 ‘제2차 공사 중단 건축물 정비 기본 계획’에서 공사 중단 건물을 줄이기 위해 사업비 융자, 건축 기준 특례 등 지원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지자체들 역시 용역비를 지원하거나 공사 재개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공사 중단 건물을 줄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강원 원주시에선 20여 년 만에 공사를 재개한 오피스텔이 미분양되면 시에서 매입하겠다고까지 약속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업성이나 시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공사 중단 건물에 대한 ‘묻지마 투자’는 경계한다. 유동성 위기 등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지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침체로 공사가 중단된 현장도 있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미분양이 많은 지역 등 입지 여건이 전반적으로 안 좋아 공사가 중단된 건물에 대한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