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연초 모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에 3년 안에 외국산 컴퓨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철거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 지침은 중국 바이어들이 자국 업체로 구매처를 바꾸도록 하는 구체적 목표가 처음으로 담긴 지침이며, 미국과 동맹국에서 중국 기술을 배제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비슷한 조치라고 FT는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5월 자국 기업이 중국 통신장비업체 겸 스마트폰업체인 화웨이테크놀로지와 거래하는 것을 금지했다. 미국은 또 유럽 동맹국들에 5G 인프라 구축에서 화웨이 제품을 배제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도 미국과 비슷하게 연초 외국산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퇴출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문서는 기밀이었지만 현지 보안업체 2곳의 직원들이 정부 고객으로부터 문제의 정책에 대해 들었다고 FT에 제보했다.
중국 증권사 차이나시큐리티즈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지침 영향으로 중국에서 약 2000만~3000만 대의 하드웨어가 교체돼야 할 것”이라며 “내년 초부터 대규모 교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내년에는 정부기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30%, 2021년에는 50%, 2022년은 20% 각각 교체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해당 지침을 ‘3-5-2 정책’이라고 명명했다.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폴 트리올로 지오테크놀로지 부문 대표는 “3-5-2 정책은 2017년 통과된 중국의 사이버 보안법에서 명시했던 정부기관과 핵심 인프라 기술 자립을 추진하는 일환”이라며 “최근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서 기술 자립 필요성이 더욱 긴급한 사안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정책의 목표는 분명하다”며 “ZTE와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이 직면한 위협을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휴렛팩커드(HP), 델 등 미국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미국 IT 업체들은 중국에서 연간 1500억 달러(약 178조 원)의 매출을 창출하지만 그 대부분은 민간 부문 구매자들한테서 나온다. 또 중국 정부기관은 이미 레노버 데스크톱을 쓰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를 중국 토종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대부분은 MS의 윈도와 애플 맥OS 등 미국산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에도 ‘기린(Kylin)’ 등 자체 OS가 있지만 여기서 쓰이는 응용 프로그램은 매우 적다.
심지어 ‘국산’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할지도 애매하다. 레노버는 중국에서 제품 대부분을 조립 생산하지만 컴퓨터 메인 프로세스 칩은 미국 인텔 제품을, 하드 드라이버는 삼성전자 제품을 각각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