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댓트립-노래와 떠나다②] "마왕 보고 싶다"…그를 기억한 거리

입력 2019-12-1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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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동상. (사진제공=이하 한국관광공사)
▲신해철 동상. (사진제공=이하 한국관광공사)
"신해철, 그리운 이여. 무대 위에서 포효하는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리운 마음 가슴에 담아두겠네. 음악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친구여…."(가수 인순이)

"힘들었던 시절 형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 날을 꿈꾸던 내게 친구가 되어준 그 노래… 내 마음속 영원한 마왕."(방송인 유재석)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신해철 작업실 주변으로 조성된 '신해철 거리' 바닥에 새겨진 추모글이다. '마왕'이라 불리며 수많은 명곡을 쏟아낸 신해철은 지난 2014년 10월 27일, 장협착 수술을 받은 지 며칠 만에 저산소 허혈성 뇌 손상으로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신해철 거리는 성남시와 팬들이 그를 추억할 수 있는 흔적과 마음을 모아 만든 곳. 마이크를 잡고 앉은 신해철 동상을 중심으로 160m 정도 이어진다.

▲거리 곳곳에 신해철이 만든 곡의 가사를 써놓았다.
▲거리 곳곳에 신해철이 만든 곡의 가사를 써놓았다.

전설적인 뮤지션을 기리고 관광 콘텐츠로 만들어 유명해진 도시가 있다.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리버풀은 록그룹 비틀스, 시애틀은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록그룹 너바나, 스톡홀름은 아바(ABBA)를 내세워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우리나라도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신해철 거리 입구.
▲신해철 거리 입구.

신해철이 쓴 노랫말도 나무 푯말에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 없노라고."('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중에서)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동료들의 추모글.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동료들의 추모글.

신해철은 1988년 12월 열린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의 보컬로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 1990년 솔로 가수로 나서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등이 잇달아 히트했다. 이후 밴드 넥스트를 결성해 1992년 '인형의 기사' '도시인' 등을 발표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갔다.

그는 활발한 사회 참여와 독설가로도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사람들이 왜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느냐고 물으면 신해철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들이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훨씬 더 엄청났기 때문에 그냥 나의 방식을 택했다."

▲생전에 그가 만든 앨범들.
▲생전에 그가 만든 앨범들.

▲신해철의 작업실 입구.
▲신해철의 작업실 입구.

그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신해철 스튜디오'에는 아직 그의 자취가 생생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응접실이 나온다. 벽을 가득 채운 서가에는 '앎의 의지',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북조선 탄생',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워렌 버핏 평전',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짧은 여행의 기록' 등 인문, 사회, 문학, 경제, 역사, 종교를 망라한 책이 빼곡하다.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 전집,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 국내 판타지 만화가 강경옥의 '두 사람이다' 등도 눈에 띄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인 신해철의 취향과 다독 습관을 짐작할 수 있다.

▲피아노가 놓인 신해철의 작업실.
▲피아노가 놓인 신해철의 작업실.

서재 옆은 음악 감상실이다. 한쪽 벽에 넥스트 콘서트 때 입은 의상이 걸려 있는데, 이 옷을 입고 열창하던 고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1997년 EMI에서 발매된 넥스트의 라이브 앨범을 감상할 수 있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조사한 '자장면 계란 회복 및 전 국민 운동' 등 라디오와 관련된 원고도 가지런히 놓여있다. 음악 감상실을 이리저리 돌아보노라면 그가 녹음하자며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 옆에는 일정표가 있다. 그의 마지막 스케줄은 2014년 10월 30일 오후 4시 JTBC '속사정 쌀롱' 녹화. 신해철은 이 일정을 끝내 소화하지 못했다. 녹화 사흘 전에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모니터 앞에는 그가 피우던 담배가 있는데, 밤새 담배를 피우며 음악을 만드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신해철 작업실의 응접실.
▲신해철 작업실의 응접실.

복도 게시판에는 그를 추모하는 팬들의 간절한 글귀가 빼곡하다. "너무 늦게 왔네요. 마음속에 잊지 않고 새길게요. 위로해줘서 고마웠어요." "하늘에서는 꼭 행복하세요." "마왕 보고 싶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곳에서 즐겁고 신나게 있어요. 저도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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