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고준희를 만났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진 현실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고 말했다.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그가 8개월 만에 언론을 통해 입을 연 것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꽤 담담한 어투였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의도치 않게 공백기를 갖게 된 고준희에게 당시의 심경을 물었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가족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광고 촬영도 했고요. 드라마 '빙의'가 4월 25일 끝났는데, 그 이후에 잡혀있던 드라마나 해외 활동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졌어요. 하차 통보를 받게 된 거죠."
- '뉴욕 여배우' 논란 이후 특별한 해명은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극에 제가 갑자기 뭘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피해잔데, 가해자들한테 물어봐야 할 얘기를 왜 제게 묻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대중에게 말하지 못하는 게 제일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제가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 해당 루머를 어떻게 알게 됐나.
"방송에 나왔을 땐 몰랐어요. 방송 5일 후에 고등학교 친구가 전화를 해줘서 알게 됐어요. 버닝썬 연관검색어에 제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버닝썬 사건이 뭔지는 알고 있었어요. 그 사건은 6개월도 더 된, 지루한 일이었어요. 대중들도 질릴 대로 질린 사건이었으니까요. 제 드라마 하느라 바빠서 남의 기사 찾아볼 여유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런 연락을 받은 거죠. 팬분들이 SNS에 '언니 아니죠', '괜찮은 거죠'와 같은 글을 남겼길래 '아니에요'라는 댓글을 달았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저라고 하니 답답했서요. 근데 언론엔 '아니에요'로 기사가 나가더라고요. 저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이후 바로 뉴욕으로 화보 촬영하러 갔었어요. 그냥 뉴욕에 가서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장소 태그를 했던 거고요. 그들이 그런 대화를 나눈 거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근데 저라고 유추해 낸 게 참…."
- 지금은 회복됐나.
"하루아침에 (회복)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저도 여배우이기 전에 여자고 한 집안의 딸이에요."
-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눈앞이 캄캄하고 어안이 벙벙한 것은 반나절과 하루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 다음엔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원래 성격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지만, 더욱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거라고, 지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하느님의 뜻이라고요. 변호사를 선임한 것도, 끝까지 가겠다고 생각한 것도 부모님 때문이에요. 엄마는 저 때문에 이명이란 병을 얻게 됐어요. 저를 믿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 동료 배우들은 어떤 메시지를 보냈나.
"제가 모르고 있는 거 같았는지, 연락을 해주더라고요. 이미 늦은 거 같지만 빨리 대응하라고요. 여배우는 이미지가 생명이라고. 저는 한순간에 제 이미지와 작품이 모두 날아갔어요. 저는 버닝썬이 어디에 있는지, 아레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다이어리에 쓰고 지웠다를 반복했어요. SNS에 심경 글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이 닥쳤는데 울타리가 없다 보니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 여자 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악성 루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길가다 퍽치기당한 느낌이었어요. 일어나봤는데 응급실이고, 제가 가진 가방이 없어진 거죠. 그리고 제 몸 어딘가에선 피가 나고 있는 상황이요. 그렇다면 순서가 있잖아요. 피나는 곳을 빨리 치료해야 하고, 제가 다쳤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을 안정시킨 후 제 가방을 가져간 범인을 잡는 식으로요. 저도 순서대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변호사 찾아갔던 거고요. 저도 감정적이기 때문에 고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다 고소하고 싶어요. 그런데 아무도 고소할 수 없대요. 버닝썬 논란을 일으킨 그들의 문자방도 타의에 의해 공개가 된 거여서 고소 대상이 아니래요. 고소를 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상황을 나라고 생뚱맞게 생각해낸 네티즌밖에 없는 거죠. 배우나 아티스트는 대중들에게 사랑받아야 존재하는 직업이에요. 대중들도 본인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일인 걸 잊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 악플러에 대한 고소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황지선 마운틴무브먼트 대표) "근거 없는 악성 루머를 퍼뜨리거나 성희롱·욕설을 한 이들 32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고,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미성년자이거나 사회적 취약계층의 경우 예외적으로 보호관찰소 교육 이수조건부 기소유예 등으로 처벌이 이뤄졌고, 나머지 피의자들은 벌금 등으로 기소됐습니다. 3명 정도는 신원미상으로 주소지 불명이어서 수배를 내린 상태입니다."
- 새 소속사에서의 첫 행보로 봉사활동을 택했다. 오는 24일엔 MBC뮤직 뷰티 토크쇼 '핑크페스타' MC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2020년 이루고 싶은 무엇인가.
"건강이 우선이에요. 엄마가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다시 열심히 할 것이니까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