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출판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게 된 윤선미 씨는 한강의 소설을 처음 해외에 알리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윤 씨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김기택, 백가흠, 백무산, 이승우, 윤홍길, 한강 등 한국의 작가들이 쓴 시와 소설을 스페인어로 옮겨왔다. ‘2019 한국문학번역상’ 시상식을 4시간 앞둔 그를 16일 서울 중국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났다.
윤 씨가 처음 한강의 책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은 2012년이다. 당시 한국 문학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읽는 순간 한강 소설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 것이라 직감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좋아할 것이란 확신이 100% 들었습니다. 읽는 순간 작품에 매료됐어요. 서양에서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아르헨티나에 책을 내놓은 후 한강 선생님이 도서전에 왔는데, 1000부가 넘게 팔려서 신문에도 난 거예요. 행사장은 사람들로 꽉 찼고, 상당히 많은 질문이 나왔어요.”
그는 한강의 책으로 번역상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채식주의자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영광스럽다고 귀띔했다.
“상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받으니 부끄럽더라고요. 마음도 무겁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강 작가의 ‘흰’을 번역하고 있어요. 스페인에서 내년 초에 나올 것 같아요. 이전엔 제가 번역해서 출판사를 찾아다녀야 했는데, 이젠 출판사에서 한강이나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자고 제안하기도 해요. 5년 전과 10년 전이 다른 만큼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다음은 윤 씨와의 일문일답.
- 15일 아르헨티나엔 왜 다녀왔나.
“최근 한국 최초 페미니스트인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의 작품을 번역해서 출판 기자간담회를 갖게 됐다. 그 작가들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독자들이 어떤 맥락에서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한 자리였다.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알려줬는데 반응이 좋았다.”
- 번역할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있나. 문화적 맥락을 이해시키는 게 중요할 거 같다.
“작품 선정을 가장 신경쓴다. 그 나라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인지 생각해야 한다. 한강 작가의 소설은 번역하기 힘들다. 비유적인 표현도 많고, 가슴을 울리는 주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울면서 번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문학의 특징인 여백의 미학 때문에 번역이 더 힘든 거 같다.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나타나는데, 서양화는 사진처럼 모든 정보가 그림에 들어가는 반면 동양화는 보는 사람이 그림을 완성시켜야 한다. 문학도 독자가 의미를 완성해야 한다. 그대로 번역하면 문장이 딱딱하고, 서양 독자에겐 초등학생이 쓴 글처럼 보일 수 있다. 여백만 있고 설명이 없으면 안 되니, 번역할 땐 많은 경우 문장들을 이어주거나 추가 설명도 해야 한다. 그래서 번역가는 그냥 말만 옮기는 게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직업이다.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은 스페인어로 어떻게 번역됐나.
“소년이 온다를 외국어로 번역하면 어느 나라 말로도 이상하다. 소년이 온다는데, 어떤 소년이 온다는 거고 왜 오는 건지. 내용하고 매치도 잘 안 된다. 독자는 잘 캐치 못 할 수도 있다. 나는 ‘촛불’이나 ‘불꽃’도 생각했다. 상징적인 의미가 많을 거 같아서다. 작가도 좋다고 했지만, 스페인 편집장이 안 팔릴 것 같다며 싫다고 했다. 그래서 영어 버전의 이름인 ‘휴먼 엑스’를 스페인어로 바꿔 나갔다. 이미 알려진 제목이니 독자들이 연결하기 수월하기도 했다.”
- 번역가의 의도와 편집자의 의중이 부딪힐 때가 많나.
“사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출판 지원을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출판을 내서 전달하면 스페인이나 외국 출판사가 찍어서 내주는 경우가 많다. 제일 안 좋은 관계지만, 일반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쪽에서 한 번 읽어보고 이 부분의 표현을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식의 의견 교환이 있어야 하는데, 원고를 그대로 내보내서 오타가 그대로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작품을 선정해 번역하고 출판사를 찾는 일이 많았다.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는 그쪽에서 먼저 관심을 가졌다. 편집자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메일을 주고받았다. 우리나라 문학이 그만큼 알려지지 않아서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거 같다.”
- 한강의 소설을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주제도, 쓰여진 방법도 굉장히 독창적이다. 3부로 나눠져 있는데 주인공의 목소리가 없다. 소설 메커니즘이 독창적이다.”
- 어떤 점이 해외에 통했다고 보는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 작가는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여성 문제는 소설 속에 항상 나온다. 일전에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그쪽에서도 ‘한국 작가들은 페미니스트인가’라고 묻더라. 여성이기에 여성 문제를 다룰 뿐, 한국 사회에 여성으로 살면서 안 다룰 수 없어서 라는 식의 설명을 해줬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인정하지 않냐고 한다.(웃음)
한강 소설이 페미니스트 주제라서 한 건 아니다. 독특하지 않나. 어느 여성이나 읽으면서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남성 독자들은 대부분 어느 나라나 공감하지 못하더라. 채식주의자 읽고 나서 ‘정신 나간 여자 이야기’라고 말하고 끝이었다.”
- ‘소년이 온다’는 좀 다를 거 같은데.
“어떤 독자가 읽어도 공감하고 이해할 것이다. 남미도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독재정권을 맞았다. 사람들이 어느 날 고문당하다 사라지는 식의 사건들도 많았다. 빨리 남미권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스페인 독자보다 더 공감할 거 같다. 아르헨티나 출판사 편집장도 관심이 많다.”